상단여백
HOME 기획 연재 고영화의 거제산책
동여도(東輿圖) 거제부 및 거제 목장(牧場)[연재]고영화의 거제산책

 1. 동여도 (東輿圖) 개요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3규(糾)로 이루어진 한국 옛 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한 지도이다. 이 지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기에 앞서 제작한 선행 지도로 여겨진다. 제작 시기는 1856년(철종 7년)부터 1861년(철종 12년) 사이이며, 책첩 형태로 가로 80리, 세로 120리를 한 개의 방안으로 하였으며 만들어졌다. <동여도>는 그 제작자가 누구인지 여러 설이 분분하다가 최근에야 김정호의 작품으로 추정하게 되었으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동여도지》 제2책 서문에서 김정호가 지도와 지지를 만들고 이를 《동여도지》라고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지는 《동여도지》, 지도는 〈동여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간기(刊記)가 있어 김정호의 작품임을 확실히 알 수 있으나 <동여도〉에는 간기가 없어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두 지도가 모두 23규로 되어 있으며, 매 규에 수록된 지도의 형태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또한 주기명(註記名)이 〈동여도〉는 18,736개인데, 대동여지도〉에서는 13,188여 개로 줄어드는데, 이는 대부분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항으로, 목각의 어려움 때문에 줄였으리라 본다. 둘째, 신헌은 〈대동방여도〉 서문에서 “김백원(金百源)에게 위촉하여 〈동여도〉를 만들게 하였다.”라고 언급하였는데, 백원(百源)은 김정호의 자(字)이다. 셋째,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실려 있는 지도표가 독특하며 매우 비슷하다. 김정호는 아쉽게도 거제도에 온 적은 없어, 앞선 연대에 제작한 거제부 지도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거제도 목장을 자세히 기입해 놓아 그 중요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 거제부 목장(牧場) 위치 및 해설 

이 지도는 약 100년 전에 작성된 해동지도 보다도 더 조잡하고 지명의 오류가 크다.  특히 아주 구천동 노자산 율포 등의 위치가 엉뚱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김정호가 거제도에는 방문하지 않았고 그 前 지도를 참고하여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세포와 옥포 사이의 거리와 지형이 너무 넓게 그려져 있어 거제도 현재 지도와는 그 차이가 크다. 

1). 이 지도의 중요성은 "거제 목장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는 것이고, 아마도 목장마다 매년 목마를 몇 필씩 상납한 걸로 보인다.
2). 구조라진은 거제도 7목장의 수세 상납을 관장(임진왜란 전까지)하였고 이후에는 진주의 창선도 목장에서 이를 관장 하였다. 
3). 산달도 목장은 조선 세종 때부터 목장 설치 운영 중이고 통영 둔전도 있어 한산도 통제사의 소속 수군들의 관리 유지에 이를 사용했다. 
4). 칠천도목장은 고려 현종 때부터 목장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도 함께 방목했다고 한다. (1663년 5백 20여 두 頭) 
5). 가조도는 말과 소 특히 흑우(黑牛)를 길렸으며 감독관이 파견 관리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주인(여객주인)은 목장을 운영하기 위해 전답에서 수세를 받았다. * 조선초기는 거제 7목장을 두었으나 단종 즉위년 1452년부터 거제부 목장 9개소 설치, 4개 포구 영전을 설치 하였다. * 거제 7목장은 산달도, 구천동, 탑포, 구영등, 장목포, 구조라포, 지세포 이다. 1678년 숙종 4년 기록중 거제목장 9개소는 칠천도, 가조도, 산달도(당시 거제부), 구천동, 탑포, 구영등, 장목포, 구조라포, 지세포,목장이다. (대동여지도, 신동국여지승람) 
 
 < 거제 목장 규모 / 경상도 지리지>
 경상도지리지 거제현 목장에는 구천동 둘레 119리 250보 말 1115필, 산달도 둘레 15리 7보2척 소 89두, 칠천도 둘레 51리 60보 말 176필, 한산도 둘레 54리 100보 말 173필, 용초도 둘레 32리 말 58필, 영등곶 둘레 50리 170보 말 67필, 등이 있으며, 염분에는 사목리(사등), 오양포, 산달포, 한다포(명진), 명진포, 산촌포, 오비포(연초), 가이포, 하청포, 사외포(하청), 황포, 등이 있다고 하였다. 

6). 慶尙道邑誌(1832년) 巨濟 ; 嶺南邑誌(1895년) 巨濟. 둘레가 45리인데 海中에 흑우(黑牛) 49隻 중 매년 5척씩 황간현에 견송(牽送)하였고, 分養馬 2필을 매년 7월에 받아서 다음해 3월에 사복시(司僕寺)에 上送하였다. 실제로 19세기 말엽까지도 6월에 전자가 행해졌다. 나중에 진주 감목관(晋州 監牧官)소속으로 가조도(加助島) 목장이 증설되어 후자의 몫은 분리되었던 것 같다. 비변사방안지도 (제작년도:1745-1765년)에는 6개 봉산과 칠천도(제향흑우소방목장)와 가조도(제마소방목장)에 목장을 설치 하였고 칠천도에 제형흑우 49마리 가조도에 목마 77마리 방목했고 목자군이 칠천도에111명, 가조도에 93명이 운영했다. 특히 제형흑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1832년 영남읍지에는 그해 흑우 5마리를 상납했다는 기록이 있다.

● 제형흑우 : 특별한 제사(흉년 기근 국가경사 천지제사 종묘대제 등)에는 흑소를 제향에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인조 16년 이후 흑우를 구하기 어려워 황우로 대체했다고 한다.
현종4년 1663년 경상 감사 이상진(李尙眞)이 본도의 폐해를 10개 조로 계문(啓聞)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 거제현(巨濟縣) 칠원도(漆原島)에 제향(祭享)에 쓸 소와 사복시의 소가 5백 20여 두(頭)나 되는데 땅이 매우 척박하여 풀이 무성하게 자라지 않기 때문에 해마다 봄 여름이 되면 짚풀을 계속 대느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섬안으로 운반해 들이는 등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사복시의 소는 혹 다른 곳으로 옮겨 방목하거나 혹 내어 팔아서 민폐를 줄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기록원 자료) 

● 칠천도 목장(牧場) / 여지도서 경상도 거제
[漆川島牧場 在府東北六十里周四十五里海中黑牛四十九隻每年五隻式牽送黃澗縣分養馬二匹每年七月受來翌年三月上送本寺]
칠천도목장 : 거제읍치에서 동북 60리, 섬 둘레 45리, 바다에 있고 흑우 49척, 매년 5척식 황간현으로 보내며, 분양말 2필을 매년 7월에 받아 오고, 이듬해 3월 본사 상부로 보낸다.  
[漆川島 在府東北五十里海中周五十一里有牧場]
칠천도 : 거제 읍치에서 동북 50리, 바다에 있고 섬 둘레가 51리, 목장이 있다.

3. 기타 왕조실록 기록

1). 명종 13년(1558년) 5월 3일대신·사복시 제조·병조가 같이 의논해 아뢰기를,
“무릇 목장 안에 목자(牧子)가 살게 하고 각각 전토(田土) 2결(結)을 주어 목장의 말을 지키게 하는 것이 법례(法例)입니다. 진주(晉州) 흥선도(興善島)의 목자는 그 섬에 살지 않고 또 경작(耕作)하여 먹을 농토도 없다고 하니, 이것은 겸감목(兼監牧) 등이 마정(馬政)에 마음 쓰지 않아서 목자들이 사는 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법례를 더욱 밝혀서 목장 안에 살면서 지키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칠천도(漆川島)의 목장을 도로 설치하는 일은, 거제(巨濟)의 백성이 지금 유망하였더라도 뒤에 도로 모이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살던 마을에 다시 목장을 만든다면, 이것은 도로 모이는 길을 끊는 것입니다. 이 점도 염려해야 하니, 본도의 관찰사를 시켜 온편하겠는지를 헤아려서 아뢰게 한 뒤에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서방의 일과 목장의 일은 모두 의논대로 시행하라.” 

2). 현종 4년(1663년) 10월 8일(임인) 본도의 폐단 10조항을 아뢴 경상 감사 이상진의 상소문. 거제현(巨濟縣) 칠천도(漆川島)에 제향에 쓸 소와 사복시의 소가 5백 20여 두가 사육되고 있는데 그곳 토질이 매우 척박하여 풀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해마다 봄·여름이면 꼴풀을 대느라 남부여대하고 섬으로 싣고 들어가고 있어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사복시 소는 다른 곳으로 옮겨 방목하든지 아니면 팔든지 하여 민폐를 덜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3). 정조10년(1786년) 4월 9일, 급복의 법을 소의 사육에도 적용하게 하다
이에 앞서 거제(巨濟)의 칠천도(漆川島) 백성이 상언(上言)하기를, “급복(給復)의 법이 말을 치는 데에만 미치고 소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정묘년(1747년 영조23년)에 조사해서 일체로 급복(부역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건의하여 윤허를 받았으나, 똑같은 은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본도에 명하여 조사해서 아뢰라고 하였다. 관찰사 정창순(鄭昌順)이 아뢰기를, “등록을 상고해 보니, 과연 복계하여 윤허를 받았는데, 선혜청에 공문을 보낸 것은 애당초 기록되지 않았으니, 이는 혹시 고식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인가 봅니다.” 하니, 예조에 하달하였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검정 소는 이미 제사에 사용하게 되어 있으며 도백의 장계도 이처럼 명백하니, 다른 목자(牧子)의 관례에 따라 급복해 주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4. 동여도 거제부 해제  
 
1) 동여도>> 거제부 상부지도 해설 
 지도의 우측 상단에 명지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소금 굽는 일이 가장 성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명 지도는 낙동강 하구에 위치하여 구운 소금을 배로 멀리 상주 낙동진까지 운반하여 판매를 하였다. 명지도 우측에 있는 몰운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해운대와 필적한다고 하였다. 그 위쪽에 칠점산을 7개의 점으로 표시한 점이 재미가 있다. 가덕도진, 제포진, 안골포진에는 첨사가 있었고 그 외 청천보, 신문보, 풍덕포보에는 별장이 주재하였다. 웅천 읍치 아래에 있는 웅포성은 왜인이 쌓은 왜성이다. 지도의 좌측 하단에 통영이 나타나 있다. 웅장한 2층 문루가 입체감 있게 서 있다. 통영의 성은 둘레가 1만 1천에 달하는 거성이었고, 본영 수군의 속읍은 거제 외에 10개 군현에 달하고 본영과 속읍?속진의 배가 거의 150척에 달하였다. 충렬사는 서문밖에 있고, 충무공 이순신을 봄가을에 제사지낸다. 충렬사는 1614년(광해군 6)에 세워졌고, 1723년(경종 3)에 사액 되었다. 큰 사각형으로표시된 세병관은 통영의 객사이다. 統虞候留防은 1753년(영조 29)부터 바람이 순조로우면 6개월 간우후가 머물러 지켰던 곳이다. 통영 부근 거제도에도 영등진, 구조라포진, 옥포진, 장목포보 등 진보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거제도의 구조라포에 ‘바람을 기다려 대마도를 왕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제도와 대마도 사이에 통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진해는 옛 웅천 읍치의 서쪽에 계획 건설한 도시이고, 조선시대의 진해현의 치소는 현재 마산시 진동면 사동리 부근에 있었다.  
 

   
 
<지도 지명>
가덕(加德) 가배량(加背梁) 가이포(加耳浦) 가조(加助) 각(도)(角(島)) 견내량관(見乃梁關) 계룡산(鷄龍山) 고현내(古縣內) 공주도(拱珠島) 영등(舊永登) 구율포(舊栗浦) 군향(軍餉) 굴량교(掘梁橋) 남촌(南村) 노론덕(老論德) 녹(도)(祿(島)) 다대포(多大浦) 대광이(大光耳) 대금산(大金山) 둔덕(屯德) 둔덕기성(屯德岐城) 망일봉(望日峯) 목우(牧牛) 목장(牧場) 목장(牧場) 목장(牧場) 목장(牧場) 미륵산(彌勒山) 벽산(碧山) 병(도)(竝(島)) 비파(比巴) 사(도)(沙(島)) 사등(沙等) 사등포(沙等浦) 사외포(沙外浦) 세병관(洗兵館) 소광이(小光耳) 소하(小鰕) 시락도(時落島) 시락포(時落浦) 신문(新門) 연대(烟臺) 영등(永登) 오양(烏壤) 옥림산(玉林山) 옥포(玉浦) 원문(轅門) 유(도)(柚(島)) 율천(栗川) 이물(利勿) 이방산(以芳山) 장목포(長木浦) 저(도)(楮(島)) 적진포(積珍浦) 조라포(助羅浦) 좌이(佐耳) 주작현(朱雀峴) 죽(도)(竹(島)) 천성(天城) 춘원(春元) 춘원포(春元浦) 칠천도(漆川島) 통영(統營) 하백(河伯) 하청(河淸) 하청포(河淸浦) 황포(黃浦) 
 
2) 동여도>>거제부 하부지도 해설 
지도는 거제도 남부, 한산도 남부, 기타 여러 섬을 나타낸 것이다. 한산도에 보이는 제승당은 1746년(영조 22)에 처음 시작하여 바람이 잔잔한 6개월 간 유방에 우후를 보냈으나, 1753년(영조 29)에 견내량으로 유방을 옮겼다.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을 봄가을로 제사지냈던 곳이다.  우측의 산달도에는 목장이 있으며, 통영의 군인에게 지급된 통영 둔장이 있었다. 기타 섬들에는 명칭과 함께 섬의 둘레가 기록되어 있다. 거제도에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명진, 아주, 송변 등 고현 들이 검은색의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변정(待變亭)은 거제 읍치에 있었던 정자이다. 읍치 남쪽의 가배량진은 오아포 우수영의 옛 자리에 설치된 진으로서 수군만호가 주재하였다. 오아포는 1593년(선조 26)에 잠시 이곳에 통제영이 있었다. 읍치 우측의 지세포는 성을 갖춘 진으로서 수군만호가 주재하였다. 구조라진, 소비포진 등은 혁폐 된 진이다. 구조라 목장 부근에 “구조라에서 바라보면 대마도와 가장 가깝다”고 기록하고 있다. 목장은 산달도목장, 구천동목장, 구조라목장 등이 있다. 비교적 큰 둥근 회색의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 율포보는 권관이 주재하였다. 욕지도와 연화도는 고성현에 속하는 섬으로서 왜의 고깃배가 상시로 왕래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욕지도에는 고성이 남아 있다.  

   
 
<지도 지명>
가라산(加羅山) 가배량(加背梁) 가을곶(柯乙串) 간다포(間多浦) 거제(巨濟) 고성치(古城峙) 고우수영(古右水營) 고통영(古統營) 공수(公須)구조라(舊助羅) 구천(九川) 구천동(九川洞) 난(도)(卵(島))남망(南望) 내모미(內毛未) 내비진(內非辰) 노자산(老子山) 눌일곶(訥逸串) 대변정(待變亭) 대좌이(大佐伊) 대죽(大竹)도(도)(島(島)) 등산망(登山望) 매매도(每每島) 명진(溟津) 목장(牧場) 목장(牧場) 목장(牧場) 목장(牧場) 반송치(盤松峙) 산달도(山達島) 산촌포(山村浦) 소비포(所非浦) 소좌이(小佐伊) 소죽(小竹) 송(도)(松(導)) 송변(松邊) 아주(鵝州) 연화(蓮花) 오소(吾所) 오아도(烏兒島) 오아포(烏兒浦) 외모미(外毛未) 외비진(外非辰) 용초(龍草) 율포(栗浦) 읍내(邑內) 장좌(長佐) 적화(赤火) 제승당(制勝堂) 주원도(朱原島) 지삼(知森) 지세포(知世浦) 추라(楸羅) 충렬사(忠烈祠) 탑포(塔浦) 통영둔(統營屯) 한산도(閑山島)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앤거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