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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동 소요동(逍遙洞)[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거제시 상문동 "소요동(逍遙洞)"은 문동저수지, 즉 옛 고현천 상류 골짜기와 그 갓길을 일컫는 말이다. '소요동'은 500여 년 전, 용재 이행, 충재 최숙생, 십청헌 김세필, 우암 홍언충, 강재 이려, 쌍매당 이윤 선생을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한시 속의 시어(詩語)로써 아름답고 여유로운 곳인 소요동은, 갑자사화로 연류 된 유배인들이 서로의 시름을 달래며,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시적 상상력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용재 이행의 '해도록'을 통해, 문동폭포(운문폭포 雲門瀑)와 더불어 지금도 전국 문인들 사이에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거제의 명소가 되었다. 다음 작품들은 거제사람이면 한 번씩 읽어본 소요동 한시(漢詩)이다.

1). 소요동(逍遙洞). / 거제도에 있는 골짜기인데 내(金世弼)가 거제귀양살이 할 때, 이용재(이행), 최충재(최숙생)와 주고받은 시가 매우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질 않다(洞在海島時謫巨濟與李容齋崔盎齋唱酬甚多今多不存). 이행(李荇)作.

愧負溪邊躑躅花(春風) 시냇가 봄바람에 한 수 지으니 철쭉꽃이 부끄러워하고
丹楓更奈九秋何 단풍도 늦가을에 접어들었으니 어찌하랴
遊魚得計潭心靜 노니는 물고기 잠잠하니 못물이 고요하고
蒼壁無蹤雨脚斜 푸른 암벽에 빗줄기가 비켜나가 종적이 없구나.
勝事從來難屢挹(前) 즐거운 일은 원래 두 번 하기 어려운건데
故人何日許重過(有約) 다정한 친구가 어느 날에 다시 찾아주겠는가?
今朝減却靑春色(林) 오늘아침 갑자기 푸른빛이 가시니
雲外懸流不受遮 구름 밖의 폭포수 더욱 뚜렷이 보이네.

택당(이식 李植 1584~1647) 왈, "이 시는 용재집에 있다(이행李荇의 문집). 공(김세필)의 시가 아니고 공에게 준 시(詩)이다. 다른 곳에서는 살필 수 없기에 그대로 둔다"하였다. 제목은 <십일서사>로 되어 있다. 이날 신청담(神淸潭 문동폭포 웅덩이) 위에 구름이 걷혔으므로 사흘 동안 놀자고 약속을 하였다.[澤堂曰 此在容齋集中 非公詩 乃贈公詩 他無可考 姑存之云 題云 十日書事. 是日 刪薈蔚于神淸潭之上 欲成四日之約也]

다음은 1506년에 이행(李荇)의 시(詩)에 화답하여 최숙생(崔淑生)이 지은, 십영(十詠) 중에 나오는 시이다. 거제시 상문동 문동폭포(雲門瀑) 입구에서 문동폭포 웅덩이 성심천(聖心泉)까지 계곡과 폭포를 노닐다가, 이행의 7언 절구에 화답하여 쓴 "5언 절구"이다(거제부읍지).

2). 소요동(逍遙洞) 和答詩 / 최숙생.
問君逍遙洞 그대에게 소요동(逍遙洞)을 묻노니
逍遙幾許遊 소요동에서 몇 번이나 소요해 놀았던가.
碧山一長嘯 푸른 산에서 한 차례 긴 휘파람 부니
月白天地秋 맑은 달빛에 천지가 가을이네.

3). 소요동(逍遙洞) / 이행.
森森喬木陰 빽빽하게 교목은 우거지고
決決淸流瀉 콸콸 맑은 시내 쏟아지누나.
道上有暍死 길에는 더위 먹어 사람 죽어도
谷中無朱夏 이 골짜기엔 더운 여름 없어라.
竹筇伴還往 대지팡이 짝하여 오고 가노니
不必朋從假 함께할 벗이 필요치 않구나.
持玆問傲吏 이를 가지고 오리에게 묻노니
誰是逍遙者 누가 진정 소요하는 자인고?

[주] 오리(傲吏) : 오연(傲然)한 관리란 뜻, 칠원(漆園)의 관리를 지낸 장자(莊子)를 가리키는바, 장자가 관리로 있으면서도 그 뜻이 높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즉, 용재 자신이 소요동에 노닐면서 자적(自適)하는 심정이 장자의 소요유에 비길 만하다는 것이다.

4). 소요동기(逍遙洞記) 中. 소요한 골짜기를 보고 적는다. / 이행.

1506년 초봄에 내가 거제도로 이배되었는데, 움푹 깊이 들어 간 곳에 유수(幽邃)한 골짜기가 있었다. 그윽한 숲이 둘러싸고 맑은 물이 콸콸 흘러 눈으로 보이느니 푸르른 산 빛이요 귀로 들리느니 쟁쟁한 물소리라, 그 빛과 소리가 서로 도와 빼어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괴상한 바위와 나무가 이끼로 뒤덮이고 푸른 깃털 긴 꼬리의 새들이 즐거운 목청으로 다퉈 울어 대어, 씻은 듯이 훌쩍 속진(俗塵)을 뛰어넘고 형해(形骸)를 벗어나서 사물의 밖에서 노니는 듯하였다. 내가 산수(山水)에 뜻을 둔 지가 거의 10여 년인데도 아직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결국 곤궁한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이곳이 내가 바라던 그러한 곳이란 말인가.

예전에는 호칭이 없었기에 내가 이 골짜기를 이름하여 소요동(逍遙洞)이라 하고, 이 시내를 이름하여 백운계(白雲溪)라 하였다. 만일 이 골짜기가 큰 도회나 읍 가까이에 자리하여, 귀족들이 밤낮으로 와서 노닐며 노래와 웃음으로 즐긴다면 나를 알아 줄 것이 분명할 터이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머나먼 변방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져 바다가 가로막고 도깨비가 사는 곳이라, 나처럼 세상에 크게 버림받은 자가 아니면 찾아들지 않으니, 이 어찌 나를 알아주지 못한 것이라 아니하리요. 오호라, 지우(知遇)를 입었는가 입지 못하는가는 어쩌면 우연에 달린 것인가. 아니면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인가. 저 조물주란 것은 과연 있는가.

만약 없다고 한다면 이 빼어난 골짜기를 누가 만들었단 말이며,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골짜기가 지우를 입지 못하니, 조물주의 호오(好惡)가 우리네 인간과 같지 않은 것이 있단 말인가. 나 또한 세상에 지우를 입지 못한 자인데 이 골짜기와 지우하였으니, 어쩌면 서로 만나려 기다렸던 것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지우를 입지 못한 것이 도리어 지우를 입은 셈이 되는 것인가. 내가 말한 지우를 입었는가 입지 못하는가는 과연 조물주의 뜻과 합치되는가. 이 또한 알 수 없는 일이고 보면, 결국 우연으로 돌리고 말아야 할 것인가.

[丙寅歲 余竄配巨濟島/窅而邃 幽林環之 淸流瀉之 目之蔥然 耳之戛然 相贊爲勝 詭石怪木 剝以文蘚 翠羽長尾 交鳴自得 洒然若超塵穢脫形骸 而遊於物之表也 余之有意於山水者 幾十數年而未之果 卒以窮躓 噫 此足以當之乎 舊無號稱 今名其洞曰逍遙 溪曰白雲 /使是而在通都大邑之交 貴游者 朝夕登陟 歌笑以爲樂 則謂之遇也的矣 而乃淪棄湮塞於荒徼之外 瀛海之爲阻 魑魅之是居 非有大謫於世者 則不之狎也 豈非所謂不遇者歟 嗚呼 其所以遇與不遇者 抑出於偶然乎 將造物者之爲之耶 彼所謂造物者 果有之耶 若以爲無也 則是勝也孰爲之 而以爲有也 則使是而不遇 將造物者之好惡 與人有不同者乎 余亦世之不遇人也 於是乎而遇焉 豈非所以交相待者耶 其不遇也 乃有遇歟 余之所謂遇不遇者 果與造物者合乎 是亦不可以知也 則其歸之於偶然者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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