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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퉁이 보낸 눈물편지’[기고]손영민 / '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 여행' 저자

   
 
봄 아지랑이가 유난히 새삼스럽게 느껴지던 어느 날. 배우 유퉁이 거제도에 불쑥 나타났다.

“행님예. KBS 가요무대 녹화를 마치고 오는 길 입니더. 내도 언젠가는 행님처럼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낮선 사람들과 인정을 나누는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더”

유퉁은 무척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사적이고 내밀한 질문을 내게 건넨다는 것은 그가 나를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 가슴 따뜻해지는 고마움과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가슴을 터놓는 대화나 책임 있는 조언을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방송활동을 재게 하며 생애 7번째 결혼식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유퉁.

그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포항교도소에 구속수감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동시에 무척이나 놀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실감난다.

나는 평소 그를 “진정한 예인(藝人)”으로 불러왔고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발랄하고 진취적이면서 의리의 사나이로 믿어온 터에 내 가슴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인생의 한 선배로서 혹은 친구로서 용기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지난 세월동안 내게 있어서 독자들과의 대화보다 더욱 강렬 했고 감동적이었던 체험은 그가 교도소에서 보낸 통한의 눈물편지를 읽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받은 첫 번째 편지를 기억한다. “~중략~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7 차례의 굴욕적인 이혼과 친형제와 다름없던 지인들의 배신. 그리고 큰 누나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실망감. 그 모두가 내 안에 있는 사사로운 욕심과 옹졸함에 있었음을...”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는 팬레터라고 했다. 나 역시 생전 처음으로 팬레터를 받아본 셈이다. 대중가요 가수나 영화배우 같은 사람들이나 받는 것 인줄만 알았던 팬레터라는 것을 받아드니 기분이 묘했다. 어색하기도하고 설레 이기도 하고 민망하기도하고...

그는 이틀 후 또 다시 편지를 보내주었다. 이번에는 내 마음에 위안이 될 글이라면서 그림까지 동봉하여 “너무 바쁘실 테니까 사무실에서라도 감상하시라”고 손수 그렸다는 살가운 마음 씀씀이와 함께.

나는 너무도 고마워서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어 짤막한 담장이라도 보내 주어야지 하고 생각 했었다. 35일 동안 구금 되어있는 동안 내가 받은 팬레터는 무려 30통에 이른다. 나는 그에게 일일이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표시 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연전에 난 그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다. 물론 그가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제주도 서귀포시 수망리에서 만들고 있는 ‘유퉁의 엉터리 공화국 미술관’을 혜공스님 그리고 설진갑 계룡산 관광타운 대표와 함께 방문 했을 때 우리일행은 깜짝 놀랄 그의 화가 적 면모를 만났다.

그의 그림은 그의 두터운 손길만큼 감추어진 한국의 고대. 현대를 조율한 탁월한 회화의 솜씨였다. 탁월한 역량은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 TV. 그리고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넘치는 삶의 해학과 표현은 그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편안한 사석에서 그와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그가 얼마나 사려 깊고 예술적인 유머와 감각이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누구에든 거침없이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자유인이요 자연 그 자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가 외국에서 경험했던 얘기를 듣다보면 애국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교민들에게 봉사하는 박애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를 진정한 예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작가적 배우 기질 때문이다. 그는 이미 연기자지만 연출가적. 작가적 창조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웬만한 연출가. 감독 그리고 작가는 그의 넘치는 창조력을 무서워하는가 보다. 그래서 그는 혼자 실행하는 총체적 예술인이 됐다. 슬프고 힘들고 외로울 때 뒷 호주머니에서 작은 붓 하나 꺼내들고 세상을 회화하고 노래를 짓고 그리고 세계의 자기를 만든다.

그는 자신의 삶을 연기 외에도 음악. 그림. 목공예. 석공예. 도예. 서예. 디자인. 창작 등을 통해 예술의 창작품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그것은 곧 ‘유퉁의 관광천국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국밥신화를 만들며 벌어들인 수익금 대부분을 창작 예술 활동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계속되는 시련으로 고통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그래도 굽히지 않고 이 시련을 기어코 극복해내는 그의 발자취는 한편의 장고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출소 후 그는 오히려 힘겨웠던 지난날을 냉철히 뒤돌아보고 오늘에 되새겨 내일의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

이제 배우 유퉁은 ‘학동몽돌해변축제’ 재능기부 공연을 마치고 7번째 결혼식 준비를 위해 몽골로 떠났다. 무엇보다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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