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연 윤원기/수자원공사

3월 꽃샘 추위가 드세다. 거제 산정상 자락에 눈이 쌓였다. 산에 가고픈 맘이 나를 움직였다. 동료와 함께 선자산에 올랐다. 계곡물을 따라 걸어갔다. 겨울인데 계곡에 물이 제법 흘렀고 졸졸졸 소리를 냈다. 귀와 눈이 즐거워 가벼운 산행이었다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삼거마을이 저아래 있다. 계곡에서 길을 잃었다. 그 흔한 등산모임의 표지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산이 완만한 덕분에 나무를 헤치면서 위쪽으로 올라갔다. 숨이 벅차 올랐다. 그래도 어쩔것인가... 계속 오를 수 밖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표지기를 발견했다. 비교적 쉬운 길로 들어 섰다.

눈이 쌓여있고, 젖은 낙엽 길을 밝으면서 몇 번 넘어지기도 했다. 마냥 즐거웠다. 해맑은 표정으로 활짝 웃는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조망했다. 양쪽을 바다가 보였다. 계량산, 노자산이 눈에 들어왔다. 발아래로 구천댐 물줄기도 보였다.

▲ 거제10대명산 선자산 전경

‘산의 형태가 부채같이 생겼다 하여 선자사(扇子山)이라 불리운다. 계룡산에서 동남쪽으로 능선을 형성하여 끝부분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용의 현상으로 머리부문이 계룡산이며 주안인 용산마을에서 용트림하여 용소沼를 만들었는데 이를 용이 살았다하여 용덤범이라 하며, 그끝등이 해발 507m다. 꼬리는 구천계곡에 닿아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못이 있고 그 맗은 물이 굽이돌아 이곳 구천댐이 이룬다. 봄이면 용의 능선인 계룡산에서 선자산까지의 주능선에는 산철쭉이 피어 장관이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온 산을 수놓는다‘

진눈깨비가 내린다. 내려 오는 길은 쉬운 길이었다. 30분가량 내려오는 길에 구천댐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물이 굽이쳐 흐르는 작은 장관을 목격한 것이다. 이곳에 정자를 세워 산수를 즐기는 장소를 만들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臥遊江山 와유강산이 딱 맞는 곳이었다. 폭 좁은 길이기만 구불구불 굽이쳐 산행의 재미를 주었다.

드디어 출발한 지점에 왔다. 당초에 왼쪽에 있는 표지기들을 보고 올라야 하는데 물소리의 속삭임에 정신이 팔려 마을길로 들어 섰던 것이었다. 표지기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산의 시인 이성부의 시가 떠올랐다.

▲ 선자산 정상에 선 필자.

나는 기막힌 풍경에 감동하기보다는
앞서간 사람의 흔적에 더욱 가슴이 뛴다
산으로 가는 것은 풍경에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 산 오르내렸던 사람들
시방 나와 함께 땀 흘리며 걷는 사람들
앞으로도 이 산 올라가야 할 사람들
그 사람들 가슴속 불덩어리 읽어보며
걷는 일이다 이것이 나를 키운다
온갖 푸나무 꽃 새 바위 아름답지만
산에 드는 사람들 사연이 더 나를 울린다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표지기들
울긋불긋 그것들이 나를 멈추게 하고
엉뚱한 곳으로 헤매기 일쑤인 내 발길
그것들을 찾아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분실물"이라고 쓴 것은 나를 잃어버렸다는 뜻인가
되찾았다는 뜻인가
"아빠와 함께 추억을"만든다는 것도 보이고
"널 위해 준비했어"도 나를 뭉클하게 한다
"유아독존" 부처님도 이 길을 갔을까
"백두산 가는 길"도 틀리지 않았다
흔적 없는 발자국들 쓰러져 흙이 된 젊은이들
오늘은 저리 많은 진달래 산천으로 불타는구나
- 이성부 : 표지기를 따라

집이 있는 장평으로 오는 차안에서 거제만이라도 산행표지기를 통일화하여 나무에 걸어둔다면 그것만이라도 거제 산의 브랜드화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는 세계 물의날 3월 22일을 전후하여 표지기를 거는 행사를 거제사람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펼쳐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노자님 말씀처럼 ‘계곡의 신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그것은 신비의 여인/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끊길 듯하면서도 이어지고/써도 써도 다할 줄을 모릅니다’ 산은 물을 언제든지 흘러내린다. 특히 거제의 산은 그렇다. 나는 착해지려고 산에 간다. 선자산은 더 그렇다.

윤원기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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