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근 고려대 명예교수(언론학)

음모와 술수와 사실을 왜곡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행위를 언론플레이라고 한다. 언론 갖고 장난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판에서 흔히 쓰는 비열한 수법이다. 현대인은 알면서도 당하고 몰라서 당하기도 한다. 그 만큼 언론플레이는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이루어진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유야무야 되고 쉽게 잊혀 진다. 그러나 똑똑한 임자를 제대로 만나면 쪽박을 차거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말에 누가 봐도 언론플레이냄새가 짙게 풍기는 통신사 기사 하나가 거제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남부내륙고속철도의 거제노선은 비용대비 경제성이 낮기 때문에 정부계획에서 제외 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Y통신 기사다. 출처는 ‘통영시 관계자’다. 출처가 애매한 이런 기사는 우선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철도가 거제로 이어질 경우 통영에는 역사가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조바심, 거제를 빼면 사업이 조속히 추진되고 따라서 통영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과 기대감이 깔린 언론플레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동기는 이해가 가지만 잘못 짚은 것 같다.

국회예결위 소속의 김한표 의원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18일 국회에서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거제가 남부내륙고속철도 노선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 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아주 좋았다. 이로써 Y통신 보도는 오보로 판명 났고 언론플레이는 싱거운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어설픈 언론플레이가 똑똑한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는 사실이다. 일주일 후인 8월 초에 유진오 원로언론인은 ‘참새가 어찌 봉황의 깊은 뜻을...’ 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했다. 그는 칼럼에서 통영시 관계자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그리고 통영소재 정부행정기관들의 민원업무가 대부분 거제시민들과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에 이들 기관들은 더 이상 통영에 있을 명분과 필요가 없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는 거제시민들에게 행정기관들을 거제로 옮겨와야 한다는 강력한 인식을 다시 일깨워 주었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로써 Y통신의 오보 기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불똥이 튀어서 잠자는 호랑이 코털을 건드린 결과를 낳았다.

그의 칼럼을 접한 거제시민들은 지금까지 겪었던 불편과 불이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제시민단체들은 법원, 검찰, 국세청, 고용노동부, 해운항만지청 등을 거제로 옮기는 일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과거에 볼수 없었던 거제시민들의 일치된 국가사무기관 유치열기는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다. 거제의 시민단체들과 언론은 좀 시끄럽다고 한다. 이들은 끝장을 봐야 속이 풀릴것다고 한다. 앞으로 선거철이 다가오면 선출직 후보자들마다 이 문제를 핵심공약으로 삼을 것이 뻔하다. 판은 겉잡을 수 없게 커질 조짐이 보인다.

세금 많이 내고 이용 빈도가 높은 거제시민은 이에 합당한 행정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예전대로 통영 가서 일보고 와라 하는 식의 관료주의적 강요는 거제시민에게 더 이상 통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민원업무는 인구수와 이들의 경제력과 비례하기 마련이다. 민원행정기관은 당연히 민원수요가 많은 곳에 소재하는 상식이다. 행정학 원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행정수요와 행정서비스는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래지향적 행정, 국민 곁으로 찾아가는 행정서비스, 비정상의 정상화를 표방하는 국정철학은 인구 30만을 목전에 두고 멀지않은 장래에 인구 50만 해양국제도시를 설계하는 거제와는 상관없는 허울 좋은 정치구호나 먼 나라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일해저터널을 통과한 유라시아철도의 국경역이 들어설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을 갖춘 거제에 대한 행정서비스망 구축과 SOC사업투자는 현재의 척도로는 미미해 보일 수도 있다. SOC사업투자는 현재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봉황의 깊은 뜻이 담긴 투자다. 당장은 버거워도 후손에 물려줄 값진 유산에 대한 투자다. 다 알다시피 세계 1차 대전에서 패망한 가난한 독일이 개념도 생소한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건설하겠다고 나섰을 때 국내외적으로 직면한 저항과 비난과 조롱,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의 아우토반을 시찰한 후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 많은 참새들의 저항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날 이들의 파급효과는 언설로 표현이 안 된다. ‘SOC사업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역사적 귀감이 된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체험하고 있다.

고속철도가 들어오면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당연히 고속도로도 따라 들어와야 한다. 통영에서 끊긴 고속도로를 거가대교와 연계하는 문제는 예산배정절차만 남은 상태라고 한다. 김한표 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성사시키면 큰 박수 받을 것이다.

요즘 통영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였다’, ‘소탐대실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게 되었다’는 등의 탄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고 한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앞으로는 누구든 거제를 상대로 언론플레이 함부로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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