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는 주어진 여건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모자라거나 불편한 점들은 가급적 덮고, 그곳만의 매력 찾기에 열중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심신이 고달프다. 시간의 흐름도 더디게 느껴져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다. 하지만 인위적이던 자연적이던 모든 여건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두 번의 지심도 여행을 통하여 터득한 섬 여행의 비결이다.

0.356Km2 면적의 지심도는 적지 않으면서도 장승포항에 가까이 떠 있어 절해고도의 신비로움 보다 이웃 동네 같은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섬이다. 일제 강점기에 군사 지역이었던 이곳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있고, 지금도 경비행장 활주로와 포진지, 탄약고의 잔해가 남아 있다.

거제의 섬과 해안곳곳에서 동백꽃이 피어나지만 거제8경중의 하나인 지심도가 유일하게 ‘동백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원시림을 간직한 섬은 봄이 오면 동백터널을 만들어 낸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초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2월말~3월 중순이 꽃구경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그런데도 10년 전쯤 지심도를 찾았을 때는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도로는 울퉁불퉁 흙길이었고 번듯한 숙박업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지심도의 풍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웅장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이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쯤의 불편함과 불만은 금세 까마득히 잊혀졌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밖에 없는 불편함도, 낡고 옹색한 민박집도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미를 유지해온 요인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바닷가에 쉼 없이 불어대는 해풍에서 봄 향기가 느껴지는 3월, 지심도가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소유권이 환원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다시 찾은 지심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 방송이 나간 이후로 관광객의 수가 부쩍 늘었고, 선착장과 마을 사이의 비탈진 시멘트 길 말고는 대체로 4Km의 평탄한 오솔길이 잘 정비되었다는 사실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였다.

배에서 내려섬에 오르면 튼실하게 자란 동백나무 군락을 만나게 된다. 바다 햇살 개화기에는 어느 때라도 동백의 요염한 꽃잎을 감상할 수 있지만 꽃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바로이맘때쯤이 아닐까.

지심도는 동백꽃만 보고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섬이다. 지심도의 자연환경은 생태적으로도 우수한 가치가 있다. 남해안 특유의 상록활엽수림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으며 개시나무를 비롯한 희귀식물과 명종위기종인 팔색조, 솔개, 흑비둘기 등이 서식한다. 동백숲길을 걷다보면 동박새, 직박구리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

까마득한 해안 절벽과 시퍼렇게 일렁이는 바다. 그리고 붉은 꽃송이가 수북하게 깔린 동백 숲 터널, 끊임없이 들려오는 동박새와 적박구리의 노랫소리...이렇듯 정감어린 오솔길을 자분자분 걷다보면 겨우내 움쳐렸던 몸과 마음이 날아갈듯이 가뿐해 진다.

지금 지심도는 한창 봄맞이로 분주하다. 지세포에서 원정 온 해녀들은 지심도 바다 속 초록빛 봄을 맞아 가사리 같은 해초며 군소, 홍합, 전복을 캐느라 여념이 없고 지심도 밭에는 푸릇한 봄동과 나물 캐는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 걸음 먼저 상륙한 봄을 느낄 수 있는 곳. 필자는 운 좋게도 지심도의 초록빛 봄 밥상을 만났다.

해녀들이 하나 둘 바다 속으로 뛰어들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양 손 가득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해녀들, 잘 여문 홍합, 전복에 바다 속 푸릇푸릇한 해초들, 거기에 바다달팽이라 불리는 군소까지. 홍합은 체취하자마자 바로 배위로 가지고와 알맹이만 빼 내는데 붉은 홍합 앞에 저절로 군침이 돌았던지 마을사람들은 텃밭에 봄동을 따서 홍합 봄동전을 준비한다.

여기에 겨우내 살찐 가사리로 된장국을 끓이고 쫄깃한 식감 자랑하는 군소는 삶아서 참기름, 깨, 고춧가루를 넣고 무쳐내면 어느새 해녀들의 밥상이 차려진다.

갑자기 몰아치는 한파만 아니면 사철 포근하다는 지심도. 벌써 밭에는 육지에서 보기 힘든 냉이며, 달래, 쑥이 가득하다. 한손에는 바구니, 한손에는 호미를 들고 봄나물 캐러 나가는 지심도 마을 아낙들에게 봄 향기를 더한다.

지심도는 낚시꾼들에게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동섬, 찬물고랑, 노란바위, 샛끌벌여 등이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포인트다. 바위 곳곳에는 계절이 무색하게 낚시꾼들이 가득하다. 볼락, 농어, 방어 등이 사시사철 낚시꾼들을 유혹한다. 대나무와 그물을 이용한 뜰채 낚시는 지심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재래식 고기잡이방법이다. 여행객들은 들망으로 낚시꾼을 흉내를 내볼 수 있다.

지심도 붉은 기운 뒤에는 장승포 바다가 펼쳐진다. 섬 정상에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맑은 날이면 남쪽 대마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3월 동백꽃의 향연이 마무리 되면 4월 유자향이 섬을 채운다.

@여행정보
-지심도 도선운항(예약문의055-681-6007)

▲글·사진 손 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 여행 저자·칼럼니스트

장승포 출발 8시30분 10시30분 12시30분 14시30분 16시30분
지심도 출발 8시50분 10시50분 12시50분 14시50분 16시50분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수시로 증편된다.
*요금(왕복)대인 12.000원 소인 6.000원

-민박집-

동백하우스펜션010-3859-7576,동백섬민박010-3655-2411,등나무 민박 010-9339-3802, 해피하우스 010-3235-7503, 황토민박 010-4722-0323, 동박새 민박 010-2063-2906, 해돋이 민박 010-9664-7180, 웰빙하우스 민박 010-2662-1375, 전망좋은 민박 010-3588-6936, 섬마을 바다풍경 011-9592-7672, 지심도여행 민박 011-9719-4200, 샛끗민박 010-4871-7179

글·사진 손 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 여행 저자·칼럼니스트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