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전국의 산과 들에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꽃망울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수선화,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 솔솔 불어오는 꽃향기 따라 봄 마중 나가는 길.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완연한 봄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고 온기가 대지를 감싸 안으면 멀리서 오는 손님 맞듯 봄 마중을 나갈 때다. 남녘에서 전해오는 꽃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니 잠들었던 미각을 깨우는 봄을 머금었다. ‘식탁위에 엎질러진 물처럼’ 그렇게 봄은 오고 있다.

온기가 닿는 곳마다 색색이 옷을 갈아입는 남녘의 봄. 거제 대금산은 봄이 되면 진달래로 온산이 붉게 달아오른다. 30~40년생 진달래 수십만 그루가 촘촘히 무리지어 있는 이곳은 산중턱에서 정상까지 진달래로 뒤덮여 흡사 진분홍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황홀한 풍경을 그려낸다. 어디서 이런 분홍빛이 나왔을까. 포근하고 따뜻한 풍경 속에 폭삭 안기고 싶은 마음이다.

거제도의 북악이라 일컫는 대금산은 왕기가 서린 곳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이 났다. 산자락이 넓고 산세가 원만할 뿐 아니라 멀리서 보면 잘생긴 여인이 아기를 품에 안은 듯해서 어머니의 품속처럼 푸근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정상주변과 비탈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돼 있어 해마다 3월말에서 4월 초순이면 온통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한 장관이 연출된다.

거제도의 아름다운 11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대금산의 진달래꽃은 오랫동안 거제도의 봄 풍경을 대표해 왔다. 하지만 근래에 대금산의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자 대금산 진달래의 명성도 점차 퇴색해 졌다. 그와 함께 해마다 열리던 진달래축제도 휴식에 들어가 아쉬움을 더했지만 거제시와 대금산 진달래 축제 위원회(회장·강영희)가 한마음으로 군락지 복원사업을 전개해 새로운 진달래 명소로 떠올랐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 하는 산신제례 행사가 열리던 날인 지난 3일, 짙은 안개와 비구름으로 거뭇거뭇한 대금산 산등성이는 무리 지어 피어난 진달래꽃으로 붉은 카펫을 펼쳐놓은 듯한 장관을 이루었다. 어쩌다 꽃빛깔이 붉은지, 산자락 아래의 찻길이나 마을에서도 그 붉은빛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대금산은 해발 437m로 낮은 봉(峰)이다. 평균고도가 해발400m에 이르기 때문에 실제 등산하는 발품을 크게 덜 수 있다. 더욱이 오르막길의 경사가 완만해서 온가족이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올 만한 곳이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도 감상하고 푹신한 풀밭에 앉아 봄날의 정취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산행을 해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진달래 군락지 3곳은 마산 무학산과 여수 영취산, 거제의 대금산 이다. 그중 대금산의 진달래 밭은 수해로 훼손이 심한 탓에 다른 진달래 명산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외포항 바다와 가덕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고, 대통령별장이 있는 저도와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대마도가 아스라이 보이는 정상에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다.

더욱이 진달래보다 더 붉은 노을이 호수처럼 잔잔한 진해만의 하늘과 바다에 드리워진 해 질녘의 풍경은 숨 막힐 듯 화사하고 아름다워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한데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려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비바람에 약해 꽃이 금세 망가지기 때문이다. 개화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꽃이 예쁜 상태는 일주일이 채 안 된다. 그래서 때를 맞춰 찾아가는 정성이 필요하다.

대금산에는 이목저수지 코스의 산행기점인 이목저수지는 해발 200m이다. 이 코스의 초반부에는 아름들이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지나게 된다. 등산로 주변에는 거제도에 흔치 않은 직송 고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위세로 늘어서 있다. 거제도에서 오지로 불리는 산골 마을에서부터 급경사의 숨가쁜 비포장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면 황금 어장인 외포항 너머로 이수도 해안과 가덕도 바다가 보인다.

화사하게 핀 꽃길을 따라 800m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훤히 트인다. 진달래 군락지로 들어선 것이다. 거무튀튀한 시루봉의 암벽과 대조를 이뤄서인지 꽃빛깔이 유난히 붉다. 그리고 꽃밭 사이로 살포시 할미꽃이 피어 있는 광경은 사뭇 감동적이고 경이롭다.

외포 코스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물맛 좋기로 소문난 비단골 약수터가 있다. 거기서 진달래 군락지 까지는 지척이다. 절골재 코스는 대금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산 코스이다. 전체적인 느낌과 풍광은 다른 코스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오르는 길이 가깝고 산에 오르기도 수월해서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상춘객들이 즐겨 찾는다.

금강산도 식후경! 대금산을 찾은 김에 먹을거리가 풍부한 외포 항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거제사람들은 바닷가에 면해 살면서도 더 싱싱한 횟감을 찾아 주말이면 외포 항을 찾는다. 그런 수요를 반영하듯 외포항 일대에는 배가 닿는 방파제를 따라 횟집이 즐비하다. 봄철 외포 항을 찾는다면 멸치 회 맛보기가 필수다. 한창 제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외포의 이색 풍물인 멸치털이 장면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여행정보

-대금산(제공처: 거제시 산림 녹지 과 055-639-4352)
장목면 대금리를 비롯하여 연초면 명동 뒷산으로 거제의 북단에 위치한 이 상은 해발 437.5m로 신라 때 쇠를 생산했던 곳이라 하여 대금산이라 하며 산세가 순하고 비단폭 같은 진달래가 온산을 뒤덮고 있어 크게 비단을 두른 산이라 하여 대금산(大錦山)이라고도 한다. 대금산 중봉을 가르켜 중금산이라고 하며 조선조 말기에 축성한 성이 있으며 이 성은 대금, 시방, 율천 등 3개마을 주민과 같이 성을 쌓고 군량을 저장하여 남해안의 각 진에 공급하였다는 산성이며, 이곳에는 약수터와 기우제를 올린 재단이 있고 약수터는 칠석과 보름에 많은 사람이 찾아 목욕하고 음용하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가 아련히 보이고 부산, 마산, 진해가 눈 아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등산로 안내-
1. 명상버든마을 0.5 대금산마을 1.3 절골재 0.3 정상
2. 반깨고개(율천고개) 1.3 약수터 0.2 진달래군락지 0.2 정상
3. 절골마을 1.8 진달래군락지 0.2 정상
4. 성포마을(임도입구) 4.1 절골재 0.3 정상
5. 절골마을 0.8 절골재 0.3 정상

▲ 글·사진: 손 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칼럼니스트

-대금산 진달래 축제 안내(장목면사무소 -
대금산 진달래 축제가 대금산 중턱, 진달래 군락지에서 매년 3월말~4월초순 경에 열린다. 대금산 등반대회, 산신제례 등 식전행사를 비롯해 초청가수 공연, 벨리댄스, 진달래 현장 가요제, 행운권 추첨, 퓨전 음악회 등 식후행사와 부대행사로 향토음식장이 열리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멸치회 맛집-
외포항에는 횟집마다 봄 멸치 요리전문점이 많다. 그중에서도 효진횟집(055-635-6340)양지바위횟집(055-635-4327)등대횟집(055-636-6426)부두횟집(055-635-6340)등이 맛 집으로 이름 나 있다. 외포 방파제 앞에 위치한 50년 전통의 외포양조장(055-636-6055)에 들러 우리 쌀로 빚은 막걸리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사진: 손 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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