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배우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만이 주연한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황혼을 맞은 두 노인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하나씩 몸소 해보는 게 줄거리다. 노장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명화로 회자되고 있다. 택시기사 이수원(51·일운면 지세포)씨도 ‘버킷 리스트’가 있다. ‘죽기 전에 꼭 소록도로 자원봉사를 가는 것’이다. 스무살 때부터 꿈꿨던 일이었다. 3년 전부터 그 꿈을 이뤘다. 택시기사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말이다. 이씨는 지난 9일 소록도로 향했다. 이씨의 손가락은 부르터 있었다. 봉사 경비 마련을 위해 평소보다 더 운전대를 잡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일하며 3년째 소록도 자원봉사 나서
바쁜 일상에도 열흘 동안 해마다 소록도 찾아

“한센병을 앓던 한하운 시인의 시집을 스무살에 읽게 됐더랬지요. 시를 읽고 나도 언젠가 소록도에 봉사를 가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음만 먹었지 실천이 안됐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면서 누군들 어린 시절 꿈을 잇기가 쉬울리 없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엔 늘 ‘소록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장성했고 경력기사로 택시 운전대를 잡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죽기 전에 꼭 소록도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2008년, 여행하러 간다며 회사에 휴가를 냈다. 작년부터는 소록도 봉사 계획을 회사에 털어놨다. 애니콜 택시 옥치민 사장도 흔쾌히 허락했다. 택시를 놀리면 회사 수입이 그만큼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봉사가 필요한 장애인들은 나름대로 도움을 주기가 쉽다면 쉽겠지만, 소록도는 그렇지가 않지요. 11월을 택한 것도 이달이 소록도에선 봉사 비수기라고 해서입니다.”

화요일을 선택한 까닭도 화요일에 가야만 한센병을 앓는 환자들을 두 번 목욕시킬 수 있어서라고 했다. 소록도가 막연히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이라는 단편적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일반인들의 인식이라면 이씨의 소록도에 대한 지식은 퍽 세부적이다. 소록도 현황은 물론 세계의 한센병 추세 등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다. 국내는 1만4000명 수준인데 소록도에 598명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염되도 초기에 주사를 맞으면 발병 억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도 했다.

“아내가 타박을 하더라고요. 봉사를 하려면 조용히 할 것이지, 왜 신문에 알리고 그러냔거죠. 저도 고민을 했어요. 다만, 다른 분들에게도 동참을 제안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씨는 최근 새거제신문에 소록도 자원봉사를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기사로 실렸다. 그걸 두고 아내가 나무란 것이다. 그는 대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고 17평형 주택에 살고 있는 평범한 서민이다. 여유롭지도 않은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열흘씩이나 일을 제쳐두고 비교적 먼 거리의 소록도로 자원봉사를 가는 게, 보통 마음으론 어림 없어 보인다. 그의 입술과 손가락은 부르터 있었다. 컨디션이 좋아보이진 않는다는 기자의 얘기에 경비 마련을 위해 더 많은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웃는다. 이씨는 거제시 장기기증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저는 약과입니다. 30여년을 소록도에서 독신으로 봉사하는 여성분도 계신데요. 마음이 원해서 하는 건데 열심히 해야지요. 그분들을 만나면, 삶은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걸 느낍니다.”

전의승 기자  zes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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