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김훈의 ‘칼의 노래’ 서문 중 일부다. 배수진을 친 용자(勇者)의 결의를 너무도 잘 표현한 명문이다. 진성진 변호사가 얼마 전 지역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 문구를 마지막 멘트로 인용했다.

그는 이 글에서 어느새 중년이 돼 버린 자신의 삶을 담백하게 정리한 뒤, 이내 지역정치판으로 시선을 옮겨, 오늘의 지역정치 현실을 강도 높게 개탄했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한 김훈의 ‘칼의 노래’ 서문을 인용하며 ‘다시 옷깃을 여민다’로 끝을 맺었다. 

새거제신문과 뉴스앤거제에 실린 이 글은 예상 밖의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판에는 수십건의 댓글이 달렸다. 비아냥도 있었지만 대부분 진 변호사를 응원하는 글이었다. ‘진성진’이라는 이름을 일반대중에게 제대로 각인시키는 큰 계기였다.

진성진 변호사. 한때 잘 나가던 검사였고, 지금도 잘 나가는 변호사다. 그런 그가 지인들을 만날 때면 우스개소리처럼 내뱉는 레퍼토리가 있다. “나도 많이 울었다 아이가”. ‘많이 울었다’는 그의 표현은 국회의원직 도전에 대한 연이은 탈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진 변호사는 지난 04년 4월 마산 회원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그가 귀향을 결심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왕에 할 정치라면 차라리 고향에 가서 하자”라고. 그리고 그해 9월 거제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08년 4월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대열에 합류했다가 또 미끄러졌다. 두 차례나 국회의원직에 도전했건만 본선무대를 밟아 보지도 못했다. ‘그동안 많이 울었다’는 그의 푸념이 빈말은 아닌 셈이다.

진 변호사는 차기 총선에 또 나설 예정이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지역언론 기고글에서 “나는 결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할 수 없다”고 선언한 그는, 이른바 ‘돈 공천’으로 얼룩진 오늘의 지역정치 현실에 숱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을 쏟아냈다. 작금의 지역정치 현실에서 인간의 탐욕과 야비함을 느낀다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12년 총선을 준비하는 그의 화두는 이른바 '설거지론'이다. 부도덕한 정치인들이 저지른 부패고리를 말끔히 정돈해, 정의가 살아 있는 거제사회를 만들겠다는 게 그의 논리다. 한나라당 공천경쟁에서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김현철 여연 부소장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김 부소장의 거제행을 두고서 ‘부패를 정리해야 할 시점에 더 심한 부패세력을 불러들이는 격’이라고 일갈했다.

아득한 적(敵)…. 그의 표현대로라면 부패에 연루된 정치인은 그에게 있어 모두가 적이다. 설령 그들이 같은 당의 동료일지라도. 정치지도자가 부패하면 이를 추종하는 일반인도 반드시 부패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피아(彼我)구분이 없는 그 부패한 적들과 자신의 마지막 바다(19대 총선)에서 한줄기 일자진을 펼치겠단다. 다시 옷깃을 연민다는 그의 기개가 새삼 궁금해 진다.

신기방 기자  nng@newsngeo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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