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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역사의 휴머니즘적 해법을 찾아서김범용 / 거제경실련 사무국장

   
 
조선일보와 조갑제는 김백일을 포로수용소에 가두지 마라

조갑제와 이념공포증

이념문제에 극도의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데올로기 포비아(ideology-phobia)’, 이념공포증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극우파인 조갑제에게서 그런 증상을 본다. “공산주의 이념 공포증”이다.

파블로프란 심리학자는 개를 통해 조건반사를 연구했다. 종소리에 먹이를 연관시켜 훈련한 개는 그 이후에 먹이가 있건 없건 종소리에 자동적으로 침을 흘리는 반응을 보인다. 조건 반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조갑제 옹의 조건반사적인 빨간색 물감놀이 색깔론이 등장했다.

우선 간략하게 김백일 동상 논란의 전개과정을 살펴보자. 포로수용소 공원 내 김백일 동상의 설치과정은 해병대 상륙작전처럼 은밀하게 준비되고 전격적이었다. 애초에 속초에 세우려다 시민들의 반대로 동상건립이 무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저간의 사정은 이해가 된다.

반면, 뒤통수를 맞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김백일 동상의 건립에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악질 친일파였다. 여기까지는 정해진 수순이다. 무감각하게 일을 처리했던 거제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때 예상 밖의 경남도의 개입이 있었고, 절차적 하자로 김백일 동상 문제가 가닥을 잡으려하자 이번엔 보수단체가 행정소송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이 시점에 시민단체의 조급증이 발동했다. 동상에 검은 비닐을 덮고, 쇠사슬을 두른 것은 조급증에 기인한 모험주의였다. 일부의 사람들에겐 김백일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한 것 같은 충격적인 사진들이 중앙언론을 타고 전국에 전파되었다. 대중적 공감의 확대와 명분을 축적하면서 명분과 이성적 논리의 우위에 서있던 시민사회단체가, 이 성급한 퍼포먼스 한 번으로 수세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 쇼 한 번으로 보수우익의 분노와 반격이 납득이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안타깝게도 김백일 동상문제는 이제 이성과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감정적 대립의 문제가 되었고, 급기야 보수극우파의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김백일 동상에 대해서 처음부터 친일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국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극우파 조갑제의 개입은 김백일 동상 문제가 가장 우려했던 좌우의 이념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다는 뜻이다. 조갑제의 색깔론은 자주 친일의 역사를 감추는 위장막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대중의 무의식 속에 있는 이념공포증을 자극하여 선동하는 데에는 천재적이다.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이 있기에 조갑제식 매카시즘도 과거 소위 좌파정권 10년 때에는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로서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나팔질이 너무 엉뚱하게 잦다. 대한민국 지성계에서 조갑제는 이미 양치기 소년에 불과한 의미 없는 존재임을 그 스스로 아는지 모르겠다. 그의 과오는 있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는 점에 있다. 조선일보 출신답게 아직도 진실이란 만들어 내기 나름이고 여론은 조작 가능하다고 믿는 듯하다. 요즘 말로 ‘안습’ 조갑제다. 불완전 연소로 매연만 내뿜는 낡고 오래된 자동차를 보는 느낌이다.

친일의 선(線)긋기와 평전(評傳)의 공정성

이데올로기는 당연하게 편을 가른다. 이편 아니면 저편을 분명하게 하라고 요구한다. 6.25 동란 과정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편 가르기의 고통을 겪은 사실을 기억한다. 그리고 잔혹한 이념전쟁이었던 6.25를 겪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때때로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 눈앞에서 붉은 피를 본 경험은 그 어떤 이념보다도 선명하고 강하다. 이른 바 “가스통 할배들을 뭉치게 하는 힘”, 반공 이데올로기이다.

친일이냐 반일이냐도 역시 이데올로기 문제이다. 친일논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그 시대를 살아봤느냐? 아마도 너는 더 했을 것이다.” 옳은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교육받은 범주 내에서 자신의 의식과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두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일본 세상이었고, 모든 언론이 친일 일색이었고, 조선독립이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 온 평범한 조선인들의 삶은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친일인가?

그러다 대한민국이 독립하고 나자 우리들 조상들은 독립투사로 변신한다. 파렴치범으로 일본순사에 처벌받은 것도 박해를 당한 것이 되고, 일본인과 사소하게 싸움박질 한 것조차 민족적 저항정신의 발로로 각색시켰다. 그 정도는 애교다. 악질 고등계 순사였던 선조를 독립군으로 환부위조(換父僞造)하는 자손들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친일과 반일이란 이데올로기의 편 가르기 경기에서 결사적으로 역사적 승자인 반일과 독립군의 편에 서고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친일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정통성문제도 있겠지만 사실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하에서 반민특위에서 친일청산이 결국 실패하게 되면서,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여권 주류세력을 공격하는 가장 좋은 정치적인 소재로 부곽 되었다는 점이다. 광복 후 두세대가 지난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정치적이다.

따라서 김백일, 백선엽에 대한 친일문제 제기는 논리적으로 당연히 이들과 비슷한 인생행로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까지 비화된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누구인가? 그는 절대적인 국민다수가 인정하는 냉전시대 남북대립과 체제경쟁의 승리자이고, 조국근대화의 국부(國父)이다. 북한은 굶주리고, 우리는 잘산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의 정서는 박정희를 선택한 우리는 옳았다는 심리적 일관성의 법칙이 강하게 작용한다. 여기에 친일 문제가 부딪히는 장벽의 본질과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해방직전 부산 인구의 1/3 이상이 일본인이었다. 우리 거제도도 비슷했을 것이다. 당연히 일상생활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인간적인 정과 교류들도 있었다. 친일과 반일로 딱 부러지게 조선인이 갈린 게 아니라, 사실 친일과 반일 사이에 굉장히 두터운 회색지대가 있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지금이나 그 때나 범인(凡人)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지, 친일이냐 아니냐가 뭐가 그다지 큰 문제였을까 라고 보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다.

친일의 선을 긋는 문제는 그래서 어렵다. 참고로 할 만한 것이 있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비시 괴뢰정부에 대한 드골정권의 숙청 사례이다. 곡필아세(曲筆阿世)한 언론인이 숙청 1순위였고, 그 다음이 비시행정부의 최고위관료들과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었다. 왜 숙청 대상에 이들이 우선적이었냐는 질문에 대해 드골은 이들이 도덕성의 상징들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군인은 그 근본에 있어서 단순하다. 명령에 복종하고, 살고 죽는다. 이런 점에서 일제 강점기에 군인이었던 자들, 박정희, 백선엽, 김백일, 정일권 등은 친일에 복무했지만, 그 동기가 개인적인 출세를 위한 것으로 단순했다. 더구나 김백일을 흥남철수작전 때의 한국판 쉰들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한국사에 기여한 그들의 행적까지 고려하면 그들을 친일파란 단 한마디로 낙인찍는 것은 사실 ‘인간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적 인간을 평가할 때 평전(評傳)을 쓴다. 친일 논란이 있는 자들은 평범한 자연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역사속의 인물이 된 것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E. H. Carr(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는 현재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몇 달 전의 동네 스캔들도 양쪽 당사자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실체적 진실이다. 하물며 두 세대, 70년 이전의 과거의 모든 사건들을 실체적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무리다. 김백일 장군도 살아서 자서전을 쓴다면 아마도 간도특설대와 관련해서 스스로를 변호할 만한 주장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결국 김백일은 타인의 손에 의해 쓰인 평전으로 평가받는 처지가 되었다. 여기에 기록하고, 평가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된다. 그런 점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친일인명록도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조갑제가 말하는 바와 같다. 물론 객관적인 자료들은 김백일이 독립군을 사냥했다고 전해지는 간도특설대의 주축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 시민사회단체가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누가 평전을 쓰느냐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죽은 자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한다. 그래서 조금은 불공정하다.

어느 누구든 감추고 싶은 비밀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30대에 요절한 젊은이에게 완벽한 영웅이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솔직해져야 인간적인 공감을 받는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우상숭배자들과 휴머니즘적 해법

한 쪽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한 쪽은 그를 민족반역자로 내치고 있다. 기실은 둘 다 동굴 속의 우상이다. 말하기 쉬운 양비론으로 어물쩍 넘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논쟁이 일어나면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서로 편리한 사례만 인용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역사를 미분적인 단면으로 이야기하는 쪽도 편견이고, 그냥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고, 나머지는 어정쩡하게 묻어버리자는 쪽도 편견이다. 그래서 그를 두고 우리 국군의 군신(軍神)이니 뭐니 하는 소리도 극단적인 우상화노름이고, 단적으로 친일파라고 부관참시 하는 것도 극단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동굴 속의 양쪽 사람들만 빼면 대다수 국민들은 그런 우상화노름과 낙인찍기 노름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오니까 동네 장기판 훈수 두듯이 한마디씩 할 뿐이다.

따 먹을 수 없을 만큼 높게 달린 포도는 여우에겐 시어 빠진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지나간 잘못된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해소과정이다. 한쪽에겐 엄청난 과오인 간도특설대 경력이 다른 한쪽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이상한 일도 그래서 가능해 진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김백일 동상건립은 요새 말로 오버(Over)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그 공과 과가 비슷하게 불행한 역사를 살다간 걸출한 인간으로 김백일을 기념하고 추모할 수는 있다. 그렇게 그가 동굴 속 한 무리의 우상숭배자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관하나, 공공장소에서 전 국민적인 추앙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기도는 뻔뻔하다. 최인훈의 비극적 소설 [광장]의 한 무대였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기리는 유적공원과 김백일 동상은 서로 역사적 연관성이 없다. 빨리 흥남철수작전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그곳에 김백일 동상이 가는 것이 그나마 타당하다고 본다.

언제나 휴머니즘은 이데올로기에서 인간을 구출해 내는 역할을 해왔다. 중요한 것은 죽은 김백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이며, 우리 지역 사람들이며, 우리 지역에서 살아갈 우리들의 후손들이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시대에 아직도 이념이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우상숭배자들 때문에 지역에 갈등과 반목을 가져오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은 없다.

마지막으로 조갑제와 우상숭배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

김백일은 ‘우상’이 아니라 불행한 역사를 살다 간 한 사람의 인간이다. 김백일을 반민족적인 행위를 했음에도 또 다른 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을 업적을 남긴 ‘한 인간’으로 되돌린 다음에야 진정한 화해와 추모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그리고 서로의 다름은 다름대로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남긴 비극적 숙제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동상은 우상 숭배적이다. 더구나 휴머니즘으로 이념대립을 넘어서 평화와 화해의 장이 되어야할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김백일 동상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김백일을 위해서라도 김백일을 포로수용소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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