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내 내로라하는 사회단체장이 이달 초(4일) 갑작스레 사라진 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 7일 가족들이 경찰에 가출신고까지 했다. 정황만 놓고 보면 사실상 실종에 가깝다. 사회단체장의 갑작스런 실종은 작은 일이 아니다. 거제를 넘어 전국적인 이슈도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가까웠던 지인들 모두가 쉬쉬하는 눈치다. 세인의 기억에서도 묘하게 잊혀지는 중이다. 왜 그럴까.

▲ 공공청사 내 거제시자연보호협의회 사무실. 윤 회장의 잠적이후 한동안 문이 닫혀있던 이 사무실은 최근에야 정상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윤 씨의 행방이 묘연해 진 건 지난 4일(토요일). 이날부터 윤 씨가 사용하던 휴대전화는 없는 전화번호로 안내되고 있다. 소방서에서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 본 결과 마지막 통화기록이 서울로 나왔다. 4일 이후 윤 씨를 봤다는 사람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없다. 지역유지로 대접받던 윤 씨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윤 씨의 행방을 짐작할 만한 몇 가지 단서는 있다. 우선 윤 씨의 휴대전화 상태다. 윤 씨의 휴대전화는 4일부터 없는 번호로 나온다. 휴대전화가 꺼진 상태와 없는 번호로 나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단순히 꺼져 있다면 ‘실종’에 가깝지만, 없는 번호로 나온다면 본인이 직접 해지했다고 봐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윤 씨는 ‘실종’이 아닌 의도된 ‘잠적’으로 볼 수 있다.

잠적의 근거는 또 있다. 윤 씨는 사라지기 몇 달 전부터 여러 빚쟁이들로부터 심한 금전 독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가 사라진 이후 자연보호협의회 사무실을 잠정 폐쇄 했다가 최근에야 문을 열었다. 빚쟁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협의회 사무실로 찾아와 윤 씨의 소재를 물어오는 통에 정상근무를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빚 독촉에 시달린 윤씨, 왜?
윤 씨의 잠적 이후 온갖 억측들이 항간에 떠돌았다. 잠적 직후 공금 횡령설까지 나돌았으나, 협회관계자는 공금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자연보호협의회 공금은 통장과 도장 등을 사무실 직원이 직접 관리해 왔고, 행사결산 등을 통해 수시로 이사회에 보고해 달리 손을 댈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윤씨의 부채는 전부 사인간의 금전거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윤 씨는 수년전부터 자연보호협의회장이라는 직책과 인맥 등을 내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인 게 양대조선 취업알선. 윤씨는 아는 사람들로부터 양대조선에 자녀의 취업을 성사시켜준다는 조건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뒤, 막상 취업을 성사시키지 못해 심한 압박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 씨는 취업알선 명목으로 받은 돈이 수억원에 이르지만 정작 성사시킨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털어놨다.

윤 씨는 독봉산 끝자락 삼성주택조합 묘지 이장에도 개입해 수억원을 받았고, 다행히 이 문제는 상당부분 진척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사인간의 분쟁이나 행정민원 등에도 개입해 일정한 이문을 챙긴 것으로 주변사람들은 전했다. 주변사람들은 윤 씨가 사회단체장 직함을 이용해 전형적인 브로커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일이 잘못돼 심한 금전독촉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윤 씨의 잠적이후 한동안 맨붕 상태에 빠져있던 자연보호협의회는 최근 긴급이사회를 열어 새 회장을 선출하고 사무실도 정상 운영하고 있다. 경남도협의회도 얼마전 회장유고에 따라 새 회장을 선출했다.

윤 씨의 잠적이 남긴 과제
지역 내 3대 사회단체 중 하나인 자연보호협의회장의 돌연한 잠적은, 지역사회에 적잖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사회단체장의 특정인물 장기집권이다. 윤 씨의 경우 회원수 8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회단체의 수장을 ‘연임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무려 12년간이나 독식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한 사람이 이렇게 오래도록 수장을 맡아야 할 이유가 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연보호협의회가 주최하는 웬만한 행사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르고, 이때마다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비용을 협찬 받아 왔다는 점에서, 비록 공금횡령은 없었다하지만, 이들 후원금 관리가 투명하게 처리됐는지도 석연찮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단체수장의 장기집권이 이같은 후원금 협찬과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잘못된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사회단체장 직위를 이용한 각종 이권개입도 큰 문제다. 윤 씨의 경우 순수명예봉사직인 자연보호협회장을 12년간 맡으면서, 여기에서 파생된 인맥 등을 활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전형적인 브로커 행태를 보여줬다고 주변인들은 전하고 있다. 직위를 이용한 이권개입이 어디 윤 씨 뿐일까. 이번 기회에 양심이 찔리는 모든 이가 깊게 반성하고 성찰할 일이다.

신기방 기자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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