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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혼성(鄭渾性)의 황학루(黃鶴樓) (2)[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다음 작품은 황학루에 올라 바라본 전경을 읊었는데, 멀리 한양성의 숲이 맑은 강물에 또렷하게 비치고 있는 짙푸른 나무를 기술(記述)한 후, 강 가운데 토사가 퇴적하여 형성된 앵무주에 꽃 풀들이 우거져 향기를 뿜어내는 정경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2편에서는 시인의 생각이 현실속의 자신에게로 돌아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한다.

선생이 계룡산에 올라 바라본 전경을 황학루 시편을 차용하여 읊은 이 작품은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고, 벌써 귀밑머리 하얗게 변해 버린 인생의 허무함과 고달픔에 시름겨운 나그네의 심정을 드러내었다. 송나라 엄우(嚴羽)는 "당인(唐人)의 칠언율시는 최호의 '황학루'를 제일로 삼는다"했다. 그리고 황학루의 또 다른 전설을 보면, "한 신선이 있었는데 신씨(辛氏)의 주막에 와서는 술값 대신 벽에 황학을 그렸었다. 주막에 온 손님들이 손뼉을 치면 황학이 박자를 맞추어 춤을 춘다는 소문이 나자, 손님들로 붐볐다. 10년 뒤 그 신선이 와서 황학을 타고 사라지니 후에 신씨가 그 자리에 누각을 세우고 '황학루'라는 현판을 달았다" 한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강 건너 한양의 나무숲은 뚜렷이 보이고
却惹空山重曉烟 문득 빈산(空山)의 짙은 새벽안개에 이끌린다.
樓上北風斜卷席 누각 위 북풍 불어 자리가 종이처럼 말리고
洞庭秋月遠連天 동정호 위로는 가을 달빛이 멀리 하늘에 이어져있다.
公車未結王望韈 귀인의 수레 세우지도 못하고 임금의 버선만 바라보며
壯志仍輸組逖鞭 장부의 큰 뜻을 누차 알리나, 한 무리가 두려움에 채찍질만 하구나.
黃鶴樓中吹玉笛 황학루에서 부는 누군가의 옥피리 소리,
水寒烟淡落花前 물은 차갑고 안개는 엷은데 꽃잎만 날릴 뿐.

芳草妻妻鸚鵡洲 향기로운 풀은 강 가운데 앵무주에 무성하게 우거진
謝公此地昔曾遊 이곳은 그 옛날 사령운공이 놀던 곳인데
鳥啼花落人何在 새 울고 꽃 지니 사람들 어디 계신가?
仙去臺空跡尙留 신선은 가고 누각만 남아도,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네.
知愛魯連歸海上 사랑을 아는 노련이 해상에서 돌아오고
共嗟王粲滯荊州 왕찬이 형주에 버려지니 모두 탄식하였다.
高樓怊悵憑欄久 높은 누각 슬프고도 슬프다, 옛 난간에 기대어
惟見長江天際流 보이는 건 하늘가로 흐르는 장강의 물뿐이네.

[주1] 노련(魯連) : 중국 전국시대 노나라 변사, 노중련(魯仲連), 고절의 선비로서 조나라 평원군을 설복하여 진나라를 황제로 섬기지 못하게 하였다.

[주2] 왕찬(王粲) :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인(177~217). 자는 중선(仲宣). 건안 칠자의 한 사람으로, 조조를 섬겼다. 위나라 시중. 산양 고평인이다. 前에 형주의 유표에 의지했으나 유표가 알아주지 않았다. 유표가 죽자 조조에게 의탁했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더냐?
杜陵遠客不勝悲 두릉의 먼 나그네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
終期直道扶元氣 마침내 기약했네, 바른 도로써 원기를 잡으려 했으나
敢負吾君作楚辭 우리 임금 어이 저버리랴, 초사를 짓는구나.
北極朝廷終不改 장안의 천자자리 바뀔 리 없고
楚天雲雨盡堪疑 초나라 하늘의 구름과 비, 모두가 미혹될 만한데
酒醒往事多興念 술 깨보니 지나간 일에 흥겨운 생각 많이 일어나,
黃鶴樓前吹笛時 황학루 앞에서 때마다 피리를 분다네.

[주] 초사(楚辭) :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사부(辭賦)를 주로 하고,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 및 후인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전한의 유향(劉向)이 16권으로 편집하였다고 하며, 후한 때에 왕일(王逸)의 〈구사(九思)〉를 더하여 모두 17권이 되었다.

煙波江上使人愁 강 위에 저녁안개 서리고 나그네 시름만 더해져
幾度高吟寄水流 물에 부쳐 흘러가니 몇 번을 소리 높여 읊조린다.
平田花界春渺渺 넓은 밭에는 꽃이 널리 만발하고 봄은 아득한데
銀河一帶水悠悠 은하수 일대에는 물만 넘실거린다.
仙人月待乘黃鶴 신선은 기다릴 사람 있어 황학을 타지만
身外無物任白頭 내 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흰머리 오는 대로 맡기리라.
遙望洞庭山水色 멀리서 동정호에 비친 산과 물빛 바라보니
春風一夜辭歸舟 봄바람이 밤새도록 돌아가는 배에다 알려주네.

 
조선후기 삼정이 문란해지고 관리들의 착취와 부패가 만연해지자 거제부민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조선초기까지는 문무과에 합격하는 이도 있었으나 조선후기부터 변방 거제섬 주민은 문무과에 응해 입신의 꿈을 꾸기가 어려워졌다. 거제학자 동록 정혼성(鄭渾性)선생께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중 한분이었으나 그 역시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은 거제의 계룡산과 선자산을 오르내리며, 그 옛날 최호가 지은 황학루를 본떠 자신의 현실좌절과 암담한 미래에 대한 보상적 심리에서 글귀를 모아 하나하나씩 조합한 것으로 보인다. 선생이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신선되어 황학타고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은, 선생의 설화 <정군자 '혼자서 즐김'>편에서도 전해지고 있다. [ 제자 한 분이 어느 저녁 날, 선생이 요술을 부리는 낌새가 보여, 문구멍으로 방안을 보니까, 담뱃대로 거문고를 튕기고 학이 날듯이 춤을 벌름벌름 치며 야단스러웠다. 얼마 후에, "선생님 계십니까?"하니, 담뱃대 하나 들고 태연히 “야야 인자 오나?”했답니다 ]. 정혼성 선생이 얼마나 황학루(도교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는지 이 설화를 통해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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