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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현(臥峴)마을 지명 어원[연재]고영화의 거제산책

   
▲ 고영화 선생
거제시 일운면 와현 마을은 천혜의 백사장을 가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지세포를 지나 누우레 재를 넘어서면 멀리 해금강이 펼쳐있고 내도 외도 구조라가 한눈에 들어온다. 멋진 풍경과 해수욕장을 지닌, 와현(臥峴)마을의 지명변천을 살펴보자.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옛 마을 이름 '눌일(訥逸)'이 > '와일(臥一, 臥逸)'로 > 다시 '와현(臥峴)'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와현리의 지명 어원은 '눌일치(訥逸峙)'가 변하여 바뀐 이름이다. 고개 이름 '눌일티(누우레재)'에서 유래되었다. 옛 고려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는 마을을 "눌일몰(눌이실), 눌일곶리, 고개이름은 '눌일티(누울고개)', 뒷산 망대 명칭은, '눌일곶망' 등으로 불리어 졌다.

현재 마을지명은 조선후기(약 17세기 말)부터 "와현(臥峴 누운고개)"이란 지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중기에서 현재까지 "와일포, 와현, 누우래, 눌일곶리"등이 함께 혼용 사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지명의 역사성 지속성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누운고개 누우래고개(재) 이름이 참 많다. 거제에도 와치(臥峙,누운재)가 있다. 이 '와치' 고개이름이 마을 이름이 된 곳이다. 예전에 신현읍(新縣邑) 서북단에 위치한 와치마을은 현재는 삼성조선소에 편입되어 이주하였으나 그 전에는 사등면(沙等面) 사곡(沙谷)으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를 '누운티'라 하여 고개 마루에서 누어 쉬어간 곳으로 와치(臥峙=臥峴)라 하였다.

와현 지명 어원인 '눌일'이란? 우리나라 고유어로써 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마치 다락이나 옥상위에 집들이 있는 것처럼, 멀리 보인다는 뜻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함축한 말이다.

   
 

아래의 조선조 역사 지명 기록을 볼 때, "눌일리 > 누일리> 누울리> 누우래"로 "눌" 자가 "눕다"로 의미 변경되어 "눌일>와일>와현"으로 지명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1). 정조2년 1778년 승정원일기에 경상도 거제부 둔전에 관한 보고서 중, "눌일포>와일포"로 지명 변화 기록이 있다.

[ 文臣 徐有防, 以耆老所言啓曰, 本所素稱殘薄, 若干給代, 不足爲養老之需, 自前設屯, 以補粥飮之資矣。慶尙道巨濟府民人等呈訴內, 本府 楊花亭 項里 '臥一浦', 望歭 書堂洞 等地, 本非封山牧場, 自是閑曠之處, 而土品亦甚膏沃, 政合起墾云, 只以民人等所訴, 有難準信,] 문신 서유방, 기로소가 아뢰기를, 본 지역은 본디부터 쇠잔하고 가난한 곳이다. “본소(本所)의 급대(給代)는 노인을 봉양하는 비용으로 부족해서 예전부터 둔전을 설치하여 죽음(粥飮 묵은 죽)의 비용을 보탰습니다. 경상도거제부민(巨濟府民) 백성의 하소연 안에, ‘본부(本府)의 양화정(楊花亭), 항리(項里), '와일포(臥一浦/눌일포)', 망치 서당동, 등의 땅은 본래 봉산(封山)과 목장(牧場)이 아니고 원래 묵고 있는 넓은 곳이어서 정히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기에 합당합니다.’ 하였습니다.

[주1] 둔전(屯田) : 고려 조선시대 군수(軍需)나 지방관청의 운영경비 조달키 위해 설정했던 토지.
[주2] 절수(折受) : 봉록(俸祿)으로 토지(土地) 또는 결세를 자기(自己) 몫으로 떼어 받던 일
[주3] 급대(給代) : 딴 물건(物件)으로 대신(代身) 줌

(2). 집성』 완의 입의(完議·立誼) 乙丑(1805년) 19세기 초의 5동(항리, 왜구, 망치, 양화, '와일곶臥逸串')의 곽세전(藿稅錢)이 35냥, 관청곽(官廳藿) 61丹이었다(거제소다포염곽전절목『巨濟少多浦鹽藿田節目』)(1890년), 등의 기록上, 지명변천은, 눌일(訥逸) >와일(臥一, 臥逸) >와현(臥峴)으로 바뀌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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