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는 한자어로 '실솔(蟋蟀)' '난부(嬾婦)' '촉직(促織)' '청렬(蜻蛚)'등으로 불린다. 귀뚜라미를 초가을에 잡아 끓는 물에 넣어 죽인 다음 햇볕에 말리거나 불에 구워 말려서 약용한다. 해열성분(글리핀)이 있어 약용할 때는 '실솔(蟋蟀)'이라 부른다. '난부(嬾婦)'는 게으른 여자, 또는 귀뚜라미를 달리 이르는 말로써, "귀뚜라미가 우니 게으른 며느리가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특히 귀뚜라미 울음에 대한 정서에는 여인이 겪는 삶의 외로움이 담겨 있다. 또한 고대 중국인들은 귀뚜라미가 날이 추워지면 빨리 베를 짜라고 재촉하듯 우는 벌레란 뜻에서 '촉직(促織)' '청렬(蜻蛚)'이라고도 한다.

옛날 정지(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던 시절, 따뜻한 부뚜막 구석엔 언제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거제도에 유배 왔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귀양살이의 비애와 곤궁함에, 귀뚜라미를 통해 스스로의 슬픔과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승화시키려 했다. 본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짝 지을 암컷을 부르거나 영역을 알리기 위한 소리인데 듣는 사람들의 심사에 따라 온갖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1). 1548년~1560년까지 고현동 유배객이었던 정황(丁熿)선생은 "20년 전 가래골(추목 마을)의 추석 달빛아래 섬나라 오랑캐와 접한 곳, 쓸쓸한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잠이 오질 않네. 마치 누각 위 미인들과 함께 하듯 하구나"[二十年前楸木洞 中秋月下島夷邊 蟋蟀聲寒自無睡 美人樓上與同然]라고 읊고는, 보름달을 미인에 비유해 귀뚜라미 소리 들으며 유배객의 외로움을 달래는 소재로 사용했다.

2). 거제면 동상리 1689년~1694년, 유배객 김진규(金鎭圭)선생은 두보의 "귀뚜라미"에 차운하여(次杜詩促織韻)라는 한시에서, "감색비단 실은 고치로 쓴 게 으뜸인데 베틀에서 천을 짜니 어찌나 사람에게 유익한지.. 거미줄같이 가늘어 가히 취할 만하고 반딧불이 밝아 친히 견딜 만하네. 한편에선 삐걱 베틀소리, 한밤의 울음소리, 부지런히 일하다 날이 다 새도다. 갖옷 갖추어 입고 이 소리 무성하니 무엇이 가짜이고 도리어 무엇이 진실인지?[繰縷元由繭 杼機豈屬人 蛛絲纖可取 螢火朗堪親 咿軋偏鳴夜 辛勤每達晨 衣裘成此響 誰假更誰眞]라며, 밤새 옆집에서 들려오는 베 짜는 소리 들으며 비몽사몽간에 위 시를 지었다.

3). 1506년 상문동 유배객 이행(李荇)선생은 한 많은 유배인의 서러움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맑은 밤 긴데 귀뚜라미 울고 파초엔 흰 이슬 새로 내렸어라. 어이 견딜꼬? 한 해도 저무는데.. 지금껏 못 돌아가는 신세라, 잠자려 자리에 누운 것 아니다. 상가(商歌)가 어찌 가난하기 때문이랴. 고향이 저 북두성 아래 있으니 고개 돌리며 자주 수건 적시노라[蟋蟀淸宵永 芭蕉白露新 那堪垂暮歲 更作未歸人 燕寢非關睡 商歌肯爲貧 故山當北斗 回首數沾巾].

[주] 상가(商歌) : 상송(商頌)이다. 《장자》 양왕(讓王) 편에, “춘추 시대에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살면서 사흘 동안 밥을 짓지 못하고 십 년 동안 새 옷을 만들어 입지 못하여, 옷깃을 잡으면 팔꿈치가 드러나고 짚신을 신으면 발뒤꿈치가 터졌는데도 발을 끌면서 상송을 부르면 그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하였다.

모두가 잠든 가을밤에 홀로 잠 못 들며 시름에 잠겼는데, 갑자기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가을이라 구슬피 우는 귀뚜라미에, 눈물을 애써 참으며 옷깃을 여민다. 고요한 적막 속에 마음을 잡아보지만 서글픈 소리에 애간장만 더 탄다. 고향의 처자식 생각과 홀로 남겨진 나를 돌아보며 쓸쓸한 가을의 정서를 노래한다. 자신의 신념에 앞서, 애끓는 귀뚜라미 음률에 절로 흐르는 눈물 닦아도 가슴은 찢어질 듯 닦이질 않는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유사(遺事)》에 따르면, “매년 가을이 되면 궁중의 비첩(婢妾)들이 조그만 금롱 속에 귀뚜라미를 잡아넣어 베개 맡에 두고 밤마다 그 우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서민의 집에서도 다 이를 흉내 내었다”하고, 또한 선생은 "귀뚜라미[促織]란 것 또한 매우 미세한 벌레지만, 베 짜는 부인이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베 짜는 일을 힘쓰게 됨으로써 그것이 세상에 유익함이 많았다. 그래서 노래를 지어 슬퍼한다"고 전한다. 옛 우리네 할머니들은 밤새 "귀뚤"소리에 맞춰 베를 짜기도 하고, 맑은 달빛 아래 다듬이를 두드렸다. 예로부터 귀뚜라미는 우리네 선조들과 이 땅에서 심중을 울리며 교감한, 고귀한 곤충이다.

다음은 이규보(李奎報)와 이식(李植)선생이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지은 작품을 감상해보자.

1). 늙은 과부의 한숨 / 이규보(李奎報)
林葉尙靑靑 풀과 나뭇잎 아직도 파랗건만
蟋蟀鳴砌底 귀뚜라미 섬돌 밑에 울어대니
婦女已驚秋 부녀들이 벌써 가을에 놀라
殷勤理機杼 정성스레 길쌈 서두는데
獨有老孀嫗 한 늙은 과부 손 모으고
拱手願復暑 가는 여름 되돌아왔으면 하누나.
時節固有程 계절에는 그 한도가 있거늘
進退寧爲汝 오가는 게 어찌 그대 맘대로 될꼬.

2). 배 안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 이식(李植)
喞喞鳴何意 귀뚤귀뚤 우는 뜻 과연 무엇인고
凄凄夜向晨 처량한 그 소리 새벽까지 이어지네.
草根應覺冷 풀뿌리에 기대기는 워낙 썰렁해서
蓬底故相親 봉창(蓬窓) 밑이 그리워 부러 찾아왔으렷다.
自有天機動 타고난 제 기능 발동하는 것이련만
翻令客思新 새삼스레 안겨 주는 나그네 시름
江湖近搖落 강호에 요락의 계절 가까이 왔는지라
知汝亦酸辛 너 역시 쓰라린 심정 알듯도 하노매라.

[주] 요락의 계절 : 가을을 말한다. 초(楚) 나라 시인 송옥(宋玉)이 지은 ‘구변(九辨)’의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소슬하게 초목은 낙엽지고 화려한 모습 쇠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유명한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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