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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북사종(巨濟北寺鐘)[연재]고영화의 거제산책

   
 
거제 북사종(巨濟北寺鐘) 차례 :  1. 머리말   2. 한국 범종(梵鐘)이란?   3. 부곡북사종(部曲北寺鐘)의 구성요소   4. 일본 좌가현(佐賀縣) 동일한 2개의 종(鐘)    5. 북사종 일본 측 기록   6. 한국범종의 구조와 명칭 
 
1. 머리말
거제도에는 고려시대 하청부곡(河淸部曲) 북사(北寺)라는 사찰에서 1026년(현종17년) 9월 제작, 1232년 일본 왜구에 의해 약탈(?)해간 북사종명(北寺鐘銘),or 거제북사종(巨濟北寺鐘) =혜일사종(惠日寺鐘)이 현재 일본 좌가현(佐賀縣) 동송포군(東松浦郡) 경정(鏡町) 혜일사(惠日寺) 사찰에 보관 중이다.

거제 최고의 유물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반갑기 그지없다. 이 사실로 하청에 부곡북사(部曲北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사실로 연관 지어 보면, 수월사 인근에 연정장(鍊汀莊,고려초~고려중기), 거제 연초면 죽토리 연사리(or 야부)'에 위치했고, 수월리(水月里) 수월사(임진왜란 소실), 하청면 가이포(加耳浦)의 가이사(임진왜란 소실)도 고려시대부터 존재하지 않았나 추정한다.

[ 조선왕조실록 현종9년(1668년) 1월 19일. 거제에서 구리가 산출되다. 거제(巨濟) 지역에서 동(銅)이 산출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동이 나지 않다가 지금 비로소 산출된 것이다.] 사실은 왜구의 침범으로 폐광되고 사라진 제련소를 이때 다시 복구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청동기 문화는 B.C 10~8세기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B.C 4~3세기에 북방계 스키타인 청동기 문화와 중국 전국시대 철기 문화가 전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금속 공예에 있어 4세기경부터는 금,은,동,철의 채굴 제련과 더불어 세공기술이 점점 조직적으로 발달하였다. 한편 6~7세기에 이르면서 불교문화의 융성과 더불어 아름다운 불상과 불구들이 조성되었다. 신라가 국토를 통일하고 왕실에서 지원 주도하에 대형사찰이 건립됨에 따라 주종도 활발하였다.

불교 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은 일종의 악기이며, 불교를 의미하는 범(梵)자를 붙여 '범종'이라고 한다. 불교 예불에 사용하는 네가지 중요한 기물을 사물(四物) 즉,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범종(梵鍾)이라 하고, 이 사물 중에서 종소리는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게 하며, 자비하신 부처님의 신앙심을 가다듬게 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2. 한국 범종(梵鐘)이란?
불교에서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소리내는 일체의 용구를 범음구라 하고 그 중 종은 당외의 종루에 걸어놓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청정한 불사나 범찰에서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고 한다. 종소리는 곧 진리의 원음이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옮겨 적으면 불경이 되고, 부처님의 복소리를 옮겨 놓은 것은 종소리라고 할 수 있다. 사찰에서 의식을 행할 때나 시간을 알리고 대중을 모을 때 종을 친다. 깊고 그윽한 종소리는 부처의 말씀으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깨끗이 참회시킨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종을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725년에 제작된 통일신라의 상원사 종이 남아 있는 종 가운데 연대가 가장 이르다.

통일신라때 중국이나 일본의 종과 구별되는 한국 종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한국의 범종은 용뉴에서부터 종신의 각 부분에 이르기까지 금속 공예가 총집합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문양의 다양성과 비천상, 보살상, 여래상의 율동성 있는 질감과 다양함 그리고 당좌 등에서 볼 수 있는 조각의 화려함과 위치의 선정, 또 범종의 주조기술과 합금기술 등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다.한국 종의 특징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가 중국 종처럼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의 용이 종을 물고 있는 듯이 표현된다는 점이다. 종의 내부까지 뚫려있는 용통 또는 음통이라는 관 역시 중국 종에는 없는 것이다. 한국 종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형태, 하늘을 나는 비천상 등 아름다운 장식과 끊일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깊은 종소리에 있다. 771년에 제작된 성덕대왕 신종은 이러한 특징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고려시대의 종은 신라 종의 형식을 따랐지만, 입구가 넓어지고 용뉴의 용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 종의 표면에 부처나 보살이 나타나며, 구획 안에 따로 제작 연대를 밝힌 글귀가 들어가고, 종의 어깨둘레에 위로 세워진 꽃잎 장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종의 형식이 이어지는 한편, 고려 말에 들어온 중국 종의 형식을 받아들여 중국 종과 혼합된 형식이 나타난다. 두 마리 용으로 이루어진 용뉴가 등장하며, 종의 몸체에 파도 무늬 또는 긴 명문을 가득 넣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 
  
   
 

3. 부곡북사종(部曲北寺鐘)의 구성요소
혜일사종(惠日寺鐘)은 原名이 부곡북사종(部曲北寺鐘)이며 현재 일본 좌가현 (佐賀縣), 당진시(唐津市) 대자종정(大字鐘町) or 동송포군(東松浦郡) 경정(鏡町)에 있는 사찰종이다.

"후쿠오카(福阿)에서부터 카라츠시(唐津市)까지 달려가야 혜일사종(惠日寺鐘)을 볼 수 있다. 혜일사종은 구경 514 mm, 전고 730 mm,두께 45mm의 종이다. 

혜일사종(惠日寺鐘)은 종정에 단용과 음통을 갖고 있고, 종신에는 견대 상대 하대 유곽 당좌 및 비천상과 위패형 명문 등 고려종의 구성요소를 골고루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종은 상협하광형의 모양을 비롯하여 당좌 비천상 위패문 등의 문양수법이 용두 상대 하대 유곽 등의 수법과 전혀 다른 점이 있어 일반적인 고려범종과 많은 차이점이 있다. 이 종에는 태평6년병인(太平六年丙寅)이라는 명문이 있어 고려 현종 17년 (1026년)에 주성된 것임이 틀림없다.

이 종에는 종신후측의 당좌와 좌측면의 비천상과의 사이에, 그리고 또한 하대에 인접하여 만든 위패형 명문곽 중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양주되어 있다. 즉 ‘太平六年丙寅九月日河 淸部曲北寺鍮鍾壹軀入 重百二十一斤 棟梁僧談曰’[태평6년 병인9월 일 하청부곡북사 유종일구입중 121근 동량승담일].

   
 
종신 아랫부분 하대에 접하는 곳에는 사각형으로 구획된 방곽(方廓內)을 만들고 그 상부를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방곽 안에는 글씨를 새겨 넣었는데, 이 같은 방식은 국보 제28호 천흥사동종 또는 현재 일본 사가(在賀)현 혜일사(惠日寺)에 소장된 태평6년(太平六年, 1026)명 거제북사종(巨濟北寺鐘) 등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명문에는 '太平六年'에서 태평은 요나라 성종(聖宗)의 연호이고 그 6년 병인은 고려 현종(顯宗) 17년 (1026년)이다. '하청부곡북사(河淸部曲北寺)'에서 하청부곡(河淸部曲)은 경남 거제시 하청면의 집락(部池)의 명칭이고, 북사(北寺)는 그 부곡의 북쪽 사찰(寺利)인데 정식사명을 말하지 않고 단지 북사라 했다. 고려 현종(顯宗) 17년 (1026년) 9월 거제도 북사 청동종 1구, 입중 121근이고, 담당스님(동량승) 담일(談 曰)이라고 명문을 요약할 수 있다."   

   
 
4. 일본 좌가현(佐賀縣) 동일한 혜일사종(惠日寺鐘)과 승락사종(勝樂寺鐘)
惠日寺鐘의 형상(形狀)및 문양(紋樣)과 동일한 승락사종(勝樂寺鐘)이 日本 九州 唐津市의 반단료승락사(半團燎勝樂寺)에 있었다고 하며 그 탁본이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명치(明治) 초에 독일인에 의해 해외로 반출되었다 하나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이 혜일사종(惠日寺鐘)과 승락사종(勝樂寺鐘)은 용두를 비롯하여 모든 문양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명문도 동일하다(크기는 다소 다르다). 만약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어떻게 한국 거제도 북사에 2개의 동일 명문의 종을 걸었을까?. 일본 카라츠시(唐津市)에 있는 인접한 2개의 사찰에서 동일종이 어떻게 있게 되었을까?

아마도 ①첫째로는 당좌 비천상 위패문 등의 문양수법은 재일 고려종의 지문판(地紋板)을 떠서 만들어 고려식(한국식)이고, 용두 상대 하대 유곽 등은 일본식 수법으로 만든, 모조고려종(模造高麗鐘)으로 추정할 수 있다.(승락사종은 혜일사종의 모조 종으로 판단된다). 

② 둘째로는 거제도 청동 제련소 연정장(鍊汀莊, 거제시 연초면 연사리 일대인데, 매립과 복토전의 옛 연사리 하천 하류 근처에 위치함)에서 만든 북사종을 왜구가 약탈해가고, 뒤이어 다시 만든 북사종도 약탈해 가, 결국 일본 구주(九州)에 2개의 동일 고려범종이 있게 되었을 것이다. 
 
   
 

5. 거제북사종 일본 측 기록
일본에 있는 대표적인 고려범종(高麗梵鐘)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인 범종과 같이 단두(單頭)의 용두(龍頭)와 음통(音痛)을 갖추고, 상하대(上下帶), 당좌(撞座), 천인상(天人像) 등을 갖추고 있다. 명문은 종의 배면(背面)의 당좌와 왼쪽 천인상과의 중간 하대(下帶)에 마련된 위패형 명문곽 안에 양주(陽州)되어 있다. 명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종은 1026년(현종 7, 大平 6)에 만들어져, 현재의 경상도 거제시 지역에 있었던 하청부곡(河淸部曲)의 북사(北寺)라는 절에 보관되어 있었다.

일본측 기록에 의하면 1232년(고종 19) 사가현(佐賀縣) 당진시(唐津市)에 있었던 비전종사(肥前鍾社)의 사람이 고려에 건너와서 많은 진기한 보물을 훔쳐 돌아갔는데, 가마쿠라 바꾸후(鎌倉幕府)에서 그를 체포하고, 보물들은 압수하였다고 한다. 결국 이 종은 13세기 왜구(倭寇)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새긴 추기(追記)가 있다.  
 
6. 한국범종의 구조와 명칭  
① 용뉴 :  용머리와 휘어진 목으로 구성된 종을 메다는 고리를 말한다. 일본 종과 중국 종은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쌍룡인 데 반하여 우리나라 종은 한 마리의 용으로 구성된다. 용뉴의 용은 원래 고래를 무서워한다는 가상의 동물인 포뢰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② 음통 :  용통·음관이라고도 불리는 대롱 모양의 관이다. 종의 공명과 관계되는 음향 조절의 기능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 가운데 하나로서, 내부가 비어 있고 하부에는 종의 몸체와 관통되도록 작은 구멍을 뚫어놓았다. 음통이 신라의 삼보 가운데 하나인 만파식적을 상징한다는 견해가 있기도 하지만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 부분을 강화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③ 천판 : 용뉴와 음통이 있는 넓고 편평한 종의 상부 면이다. 통일신라 종에서 고려 전기 종의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판무늬 디를 둥글게 돌아가며 시문한 경우가 많다. 이 천판 부분에는 대체로 주물을 부은 흔적이 남아 있다.  

④ 견대 :  천판 외연을 돌아가며 연판무늬 띠가 둘러진 장식대이다.

   
 
⑤ 상대 : 천판과 연결된 종신 상부의 문양 띠로 통일신라에는 주악천인상이나 보상화무늬, 연당초무늬를 새겼고, 고려시대에는 연당초무늬와 보상화무늬 외에 국화무늬, 번개무늬 등이 다양하게 장식된다. 조선시대에는 범자무늬로 상대를 구성한 예가 많으며, 아예 상대가 생략된 종의 예도 보인다.  

⑥ 연뢰·연곽 :  연꽃봉오리 형태로 돌툴된 장식을 연뢰라고 하고, 그 장식을 싸고 있는 방형곽을 연곽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종은 방형곽 안에 반드시 9개씩의 돌출 장식이 배치되며 그 형태도 작은 돌기형이다. 따라서 일본 종의 유두라는 명칭과 달리 우리나라 종은 연뢰로 불러야 하며 이 연뢰가 배치된 곽도 연곽 또는 연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⑦ 종신 : 종의 몸체로 통일신라 종은 대체로 윗부분이 좁고 아래로 가면 불룩해지다가 다시 종구 쪽이 좁아지는 독과 같은 형태를 취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종구 쪽이 좁아지는 경향이 점차 사라져 직선화도니 경우가 많으며 조선시대는 고려 말 중국 종의 영향을 통해 종신이 점차 바깥으로 벌어지거나 원추형, 삼각형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된다.  

⑧ 종신부조상 : 종신의 당좌와 당좌 사이 앞뒤 면 동일하게 주악천인상과 공양자상, 비천상, 불·보살상 등을 장식한다. 통일신라 종은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을, 고려시대의 종은 비천상, 불·보살좌상을 장식하며 조선시대의 종은 보살입상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⑨ 당좌 : 종을 치는 자리로 마련된 원형의 연꽃무늬와 그 주위의 당초무늬 장식을 말한다. 통일신라 종은 종신의 삼분의 일쯤 되는 가장 도드라진 종복부에 배치되며 고려시대 종은 하대 쪽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수효도 통일신라 종은 반드시 앞뒤 두군데이지만 고려 종은 네 개로 늘어나기도 하며 조선시대 종은 당좌가 생략되기도 한다.  

⑩ 종구 :  종의 터진 입구 부분을 말한다. 일본 종에 비해 우리나라 종은 두께가 앏게 주조된 것을 볼 수 있으며 통일신라 종의 종구는 안쪽을 만져보면 안으로 오므라들게 처리되었다. 종의 공명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려한 의도적인 구성으로 추측된다.  

⑪ 하대 :  종구의 연결되는 아래 문양띠로, 상대와 동일한 문양 구조로 장식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로 다른 문양으로 구성한 예도 간혹 보인다
  
   
 
● 결어 : 거제도를 포함한 남부지방 섬에는 조선시대까지 본도(本島)의 사찰 중, 정식 스님이 10명이상 거주했던 사찰의 역사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대형 사찰에는 반드시 '사원에 소속된 토지'와 '노비'가 있어야 유지할 수 있었고, 또한 건물 건평이 수천평, 사원토지는 최소 수만평 이상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거제 최고의 유물로, 일본 좌가현에 있는 하청부곡 '북사(北寺)'범종(1026년 제작, 1232년 왜구 강탈)'도 총높이 72cm(종 머리 포함), 종신 51.8cm, 종의 지름 44.5cm에 무게 72Kg정도이며, 건장한 장골이 지게에 지고 산에 나를 수 있는 무게로써, 당시 일반 사찰에 하나씩 걸려있던 고려범종이었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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