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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가이사(加耳寺) 칠천도(漆川島)[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정황(丁熿) 선생은 마음 둘 곳 없는 유배객의 심정을 달래고자, 대부분 신현읍 수월사(水月寺)를 방문하곤 했다. 배소에서 많이 떨어진 하청면 가이포(加耳浦)에 위치한 가이사(加耳寺) 사찰을 찾은 것은, 당시 거제도엔 이름난 노승 운욱(雲旭) 스님이 계셨다. 사찰에서 옥석(玉石)으로 만든 등잔에 심지 돋우고, 정황은 식사를 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나는 유배인으로써 세속에 얽매인 귀양살이인데 저 스님들은 세속을 떠나 참선을 수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인다. 거제는 빨리 떠나고 싶은 귀양지이지만 거제 형승은 아름답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후 운욱 스님은 정황 선생과의 친분으로 수양동 수월사로 옮겨와 계셨는데 정황선생은 다시 견내량으로 배소를 옮기게 된다.

1). 가이사 노승 운욱에게 주다(加耳寺贈老髡雲旭) / 정황(丁熿).

心事不聊頼 마음 속 생각들을 의지할 곳 없어
佛家尋老髡 불사의 노승을 찾았다.
玉燈連沈席 옥등에 이어진 오래된 자리에서
麤食共晨昏 거친 밥에 조석을 함께한다.
拘係是我累 매여 있는 난 이렇게 누추하고
浮遊何汝痕 떠다니는 당신은 무슨 자취 있으랴.
蠻夷無久滞 거제도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나
知異好乾坤 기이하게도 하늘과 땅이 좋음은 알겠네.

위 한시 속의 가이사(加耳寺)는 임진왜란 때 거제도의 여러 사찰 및 누정과 더불어 소실 된 것으로 보인다. 가이사가 위치한 가이포(加耳浦)의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거제현(巨濟縣)편, "오비포(吾非浦) 현(고현성) 북쪽 20리 지점에 있고 가이포는 현 북쪽 25리 지점에 있으며 하청포(河淸浦)는 하청부곡(河淸部曲)에 있다." 그리고 거제부읍지(1759년) 여지도서(輿地圖書)편, "오비포는 읍치(거제면) 동북쪽 40리에, 가이포는 읍치 동북쪽 50리, 하청포는 읍치 동북쪽 50리 옛 하청부곡에 있다[吾非浦 在府東北四十里 加耳浦 在府東北五十里 河淸浦 在府東北五十里古河淸部曲]"고 소개하고 있다.

   
 
2). 운욱 스님을 부르다(招雲旭上人)

水月山中有蕭寺 수월산 속에 사원(寺院)이 있는데
師曾爲我鉢來留 선사가 일찍이 나를 위해 머물렀다.
我移見乃師何後 내가 견내량으로 옮겨왔는데 선사는 어떻게 지낼까?
春晝遲遲不自由 봄 낮은 더디고 더디건만 자유가 없도다.

[주] 소사(蕭寺) : 중국 양나라 무제가 절을 많이 지으면서 자기의 성씨가 소(蕭)씨 이므로 절 이름을 소사라 불렀다. 이제는 본래 뜻이 바뀌어 사원(寺院)의 넓은 의미로 바뀌었다.

조선 세종 때 가이슬포(加耳瑟浦) 지명이 16세기에는 하청의 가이포(加耳浦)로, 다시 18세기부터 내가이(內加耳, 석포리 덕곡리), 외가이(外加耳, 유계리)로 방리(坊里)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분화 통합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종13년 1431년 7월7일 "거제도 바깥쪽 율포의 전토(田土)는 하청(河淸) 가이슬포(加耳瑟浦)에 사는 사람에게 예전대로 경작하도록 허락하고, 옥포·영등포 만호(萬戶)에게 보살펴 수호하도록 하옵소서."라는 경상감사의 장계에 '가이슬포(加耳瑟浦)'의 지명이 등장하며, 선조26년 1593년 7월 20일 "적선들이 금년 6월 23일 야음(夜陰)을 틈타 몰래 도해(渡海)하여 거제 경계에서부터 영등포·송진포·하청가이(河淸加耳)까지 가득 정박하고 있는데 선박의 수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여염(閭閻)을 분탕(焚蕩)하는 것은 전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당시 이순신과 전라관찰사 정암의 치계를 살펴보면, 장목면 구영등포에서 칠천도와 함께 만으로 둘러싸인 하청면 가이포(加耳浦), 즉 유계리 덕곡리까지 왜선이 가득 정박했음을 알 수 있다.

원 지명 가이슬포의 '加耳瑟'을 한자어로 풀이하면,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평화로운 마을"로 의역할 수 있지만, 오래된 지명은 대다수 지역 토속어를 음이 비슷한 한자로 차용했고, '加耳'라는 지명은 전국 여러 군데 있음이 확인된다. 그 중에 진주시 진양호 수몰지에 '가꼬실(加耳瑟)' 마을이 있었다. 이에 옛 고려시대 거제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 칠천도에 늦게 정박하다(漆川島晩泊) / 정황(丁熿).

寓宿永登浦 영등포에서 잠깐 묵는데
浦公能愛賢 영등포 공은 어진 이를 사랑한다.
樓船載厚意 누선에 도타운 마음 실으니
雲日低高天 구름 속 태양이 높은 하늘에 머문다.
棹去馬山後 마산을 뒤로하고 노 저어 가는데
風便烏壤前 오양 앞바다에서 순풍을 만났다.
不降漆川島 칠천도에 상륙하기 어려워도
堪看鯨濤邊 큰 물결 언저리 참 볼만 하구나.

3). 거제 칠천도를 지나며[過巨濟漆川島] / 1404년 정이오(鄭以吾)선생이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三日東北風 3일 간의 동북풍에
澒洞翻溟渤 골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네.
四面雪山崩 사방으로 눈산 같은 물결이 무너져
倒瀉鼋鼍窟 자라 굴에 거꾸로 쏟아지네.
雲陰日色薄 구름이 그늘져 햇볕이 엷고
雨點還蕭瑟 빗방울은 도리어 쓸쓸하네.
巨艦低且昻 큰 배가 낮았다가 솟구치고
島嶼惘相失 섬들은 아득하여 서로 찾지 못하네.
性命鴻毛輕 생명은 기러기 털처럼 가벼우니,
所賴惟忠質 믿는 것은 오직 충성된 이 마음 뿐.
于役微君故 일에 매인 것 임금의 일 아니라면,
胡爲不自逸 어찌 스스로 편하게 하지 않으리.
天懽諒斯裏 하늘만은 이 충정(衷情)을 알아주어서
訖可賜晴日 웬만하면 개인 날을 내려 주겠지.
遠愧晉謝安 아득히 진(晉) 나라 사안(謝安)에게 부끄러워라.
還家歸棹疾 집으로 돌아가는 돛배가 빠르구나.”

[주1] 홍동(澒洞) : 연속한 모양.

[주2] 우역(于役) : 부역 나감, 혹은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감.[주3] 사안(謝安) : 중국 동진 말년의 정승인 사안은 진중한 사람이었다. 그의 조카가 진왕 부견의 95만 대군을 8만으로 물리쳤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큰일에도 태연하던 사안에게 부끄럽다는 말이다.

교은 정이오 선생은 당나라 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시에 대한 조감(藻鑑)이 뛰어난 분이셨고 조선초기 시인 중에 가장 뛰어난 쌍매당 이천 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또한 정감(情感)을 중시하며 문장은 평이하면서도 기교는 별로 없으나 고아한 표현에 운율미를 갖추고 있다. 정이오 선생의 아들 우찬성 진양 좌상 정분(鄭苯) 공은 거제치소 고현성 축조 시에 음양을 살피고 샘물을 찾고 건물의 위치와 성문의 방향을 살폈던 분이다. 부자(父子) 모두가 우리 거제에 큰 업적을 남겼다.

거제도 관련 시들은 정이오 선생이 평소 친분이 두텁던 박덕공이 제주목사로 임명되어 갈 때 병조의랑(정4품 관직)으로 임명되어 함께 제주도로 가면서 지은 시들이다. 1401년 10월에 박덕공이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1403년 12월 퇴임 한 기록을 참고하면, 1401년 6월(음력) 경상도 웅천 소속 수군의 함정에 박덕공과 함께 타고 <조풍설 기록>, 가덕도에서 출항하여 이들을 마중 나온 전라수사 진원세의 함대와 함께 제주로 가는 도중, 한여름 풍랑을 만나 고생하다 거제도 영등(장목면,구영등)포를 거쳐 견내량을 지나 남해 관음포, 순천 묘도(猫島)로 가서, 전라남도 고흥(강진)에서 제주도로 향하였다. 선생은 뱃길을 따라 가면서 보고 느낀 점을 시(詩)로서 남겨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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