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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면 다포(多浦) 염전곽전 절목(節目)[연재]고영화의 거제산책

   
 
● 거제 남부면 사다포(소다포,多浦)염전곽전 절목(塩藿田節目)
조선시대 특정정책, 사업의 시행지침 또는 규칙을 나열한 절목(節目)은 정부 사업지침, 관청 수세절목, 지방 사족층의 사창절목(社倉) 등 여러 종류의 절목이 있다.

거제에 전해오는 절목은, 조선시대 거제부의 살림살이에 관한 '거제부 보민고 절목(巨濟府補民庫節目冊)'과 제반잡역을 부담키 위해 설치한 조목인 '무열고절목(懋悅庫節目)', '사다포(다포리)염전곽전절목(巨濟沙多浦塩藿田節目)'이 있다. 이 중, 사다포염전곽전절목 내용은, 경상도관찰사가 거제군 남부면 소다포(少多浦)의 염전과 곽전의 세금징수에 관한 새로운 절목을 만들어 시행케 한 문서이다.

[서울 전동에 사는 민보국(정1품)집안 고관인사의 소유 염부로써 1880년 기구를 갖추고 소금을 생산했으나 10년 사이에 문서를 잃어버렸고 또한 관리가 되질 않아 세금납부가 없어, 바로잡고자 국가에 귀속케 하였고, 또한 세금을 거제 읍내 아전이 징수케 하였다. 염전세는 매년 4월내에 350냥으로 납부토록 새로 책정하였고, 그중 50냥은 서울로 심부름하는 사람의 몫으로써, 잡비로 쓰도록 하였다. 호위청에서 거두는 원세는 구분하여 전례에 따라 시행하였고, 곽전세(미역 등 해물)는 세금을 바치는 곳에 따라 달리하고, 염전 제방을 쌓는 비용인 잡비로 사용토록 했다. 소금가마와 각종 도구 등 물건은 절도사 관청이 전부 맡아 관리하며, 매년 돈으로 보답함이 불가하니 소금 7석 정도를 이전의 조목에 의거하여, 관청에 제하여 주었다. 충분하진 못해도, 추후에 계속 준비하여 시행토록 했다. 1890년 2월 (官印)].] 1717년 4월11일 통제사 윤각(尹慤) 장계, "거제 구미산(九味山)과 소소포(小所浦) 두 곳의 솔밭(松田)에 염한(鹽漢) 박기연(朴己延)·서귀선(徐貴善)·곽운이(郭云伊)·정선이(鄭善伊) 등이 각자 솔밭 아래에 염부(鹽釜)를 설치하고 크고 작은 소나무를 가리지 않고 작벌하여 소금을 구웠다."는 기록으로 볼 때, 가마솥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은 거제에서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 개요 : 거제도에 관한 절목(節目)은 조선시대 거제부의 살림살이에 관한 가계부(수입,지출)였던 거제부 보민고 절목(巨濟府補民庫節目冊)과 제반 잡역을 부담하기 위해 설치한 조목인 무열고절목(懋悅庫節目), 그리고 거제 사다포(소다포), 염전 곽전 절목(巨濟沙多浦塩藿田節目)이 있다. 다음은 이 중에 거제 사다포(소다포)염전 곽전 절목(巨濟沙多浦塩藿田節目)에 관한 자료이다. 1890년 경상도 관찰사가 거제군 남부면 소다포(少多浦)의 염전과 곽전의 세금 징수에 관한 새로운 절목을 만들어 시행하게 한 문서이다. 그 이전에는 민씨 집안 고관인사의 소유로 되어 있었으나, 관리가 되질 않아 국가에 귀속케 하였고, 또한 그 세금을 거제 읍내 아전이 징수케 하였다. 염전세는 매년 350냥으로 새로 책정하였고, 곽전세는 염전의 둑을 쌓는 잡비로 사용하라는 절목(節目, 시행규칙)이다. 
  
   
 
2. 巨濟沙多浦塩藿田節目 거제 사다포, 염전 곽전 절목.
/兼使(押) / 官印.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高宗27年(1890年). 관부문서[官府文書(節目, 시행규칙)].   
庚寅二月 日 경인년 1890년 2월 일
巨濟少多浦塩藿田節目 거제 소다포 염곽전 절목
觀察使兼巡察使 관찰사 겸 순찰사
親軍南營使爲節目成給 친군 남영사(친군영의 으뜸벼슬, 경상도 관찰사 겸임) 위 절목 성급(문서나 증서 발급)하였다.
事巨濟府少多浦塩田藿田 거제부 소다포 염전 곽전의 일은
卽磚洞閔輔國宅立案地也塩釜 즉 서울 전동에 사는 민보국(조선 정1품 최고품계, 민씨 세도출신의 어느 인사) 댁이 입안한 땅이며, 염부(소금 가마)이다.
器械諸般排寘在於庚辰而迄 제반 기구들을 경진년(1880년)에 차례로 두루 갖추게 되었다.
今十年之間幹事之人全失句 지금은, 10년 사이에 일을 맡은 사람이 문서를 모두 잃어버렸다.
檢海隅遐俗認若無主煮塩 조사해 보면, 멀리 바다 한 구석에 소금 굽는 일은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 전통적으로 허가한 일이 되어버렸다.
則托以陳廢税錢則歸於邑納 버려둔 세금은 위임한 고을에서 받도록 맡겼다.
今玆定送營校眼同邑吏及當 올해부터 바로잡고자 영교(사령본부의 장교)를 보내어 증인인 고을 아전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初幹事差人築底摘奸然後 시중드는 사람이 난잡한 일이 있나 조사한 연후에 가장 밑바탕이 되는 일을 처음 맡아 처리하였고,
塩藿田形址宛然是立案所載 염전과 곽전의 자리가 있었던 윤곽이 완연하였다. 이는 입안한 문서에 실린(내용) 그대로였다.
而吏民之瞞過幾年者現露 관민이 속아서 넘어간 지, 몇 년 만에 비밀이 드러났다.
無餘矣以此卿宰家立案之地 이 재상(민보국)집안에서 입안한 땅이 조금도 남지 않았다.
眩幻名目從中移屬者萬不穩 혼란하고 어지러운 명목뿐인 소속을 그대로 두지 말고 바꾸어 이속 시켜, 當固當逐年徴出於各該吏 응당 견고하게 주관하여 해마다 각 담당 관리가 징수토록 하라.
以懲前習而事屬旣徃寘之 이전의 관습대로 행하면 징계토록 하고, 이전에 보낸 대로 처리하라.
勿問是在果今年爲始邑納三 금년에 처음으로 고을 읍치로 350냥의 세금을 납입토록 하며, 과거에 있었던 결과를 더 이상 묻지 않도록 하고,
百五十兩永爲革罷閔輔國宅 영원히 민보국 댁의 권리를 폐지토록 하라.
收税以三百五十兩酌定應行條 수세(收税)는 350냥으로 결정하니, 마땅히 행하여야 할 조목이다.
例列録于後成節目四件分寘 차례로 기록한 조목은 4건을 나누어 처리하여 후에 이루어진 절목이다.
京營邑及該浦塩作處恪遵毋 서울, 진영 고을과 더불어 해당 포구, 소금을 만든 곳, 정성을 다해 지켜야 함이다.
替以圖久遠宜當者 쇠한 이 규칙은 마땅히 몹시도 오래된 것이었다.(다시 고쳐 시행한다)
庚寅二月 日 경인년 1890년 2월 일. 兼使(押) 겸사 (압) 도장 날인.
 
一塩田税段毎年三百五十兩式 四月内收納是矣就其中五十兩 除給京差人以爲徃來留連襍費 之資爲齊 염전의 세금은 해마다 350냥 정도이다. 4월내에 납부함은 꼭 지켜야 하며, 나아가 그 50냥은 서울로 심부름하는 사람의 몫으로써, 왕래하며 숙식하는 잡비로 쓰도록 할 것.
 
一扈衛廳納元税段依例施行 爲齊 호위청(궁궐 경비)에서 거두는 원세는 구분하여 전례에 따라 시행 할 것.
一藿田税從其所捧以爲塩田堤堰 防築役費是遣藿田塩釜器械等物看檢之節使吏廳一體句管此不可無酬勞毎年塩七石式依已例除給吏廳爲齊곽전세(미역 등 해물 캐는 곳)는 그 세금을 바치는 곳에 따라 달리 하고, 염전 제방을 쌓는 비용이니, 곽전으로 돌려보내고, 소금가마와 각종 도구 등 물건은 절도사 관청이 전부 맡아 관리하라. 이것은 매년 돈으로 보답함이 불가하니 소금 7석 정도를 이전의 조목에 의거하여, 관청에 제하고(빼고 줄 것) 줄 것.  
 
一未盡條件追後磨鍊爲齊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충분하진 못하나, 추후에 계속 준비하여 시행할 것. (官印 一二個處, 관인 한 두개 날인) 
  
   
 
[주] 절목(節目) : 조선시대에 특정 정책이나 사업의 시행지침 또는 규칙을 나열한 것.
정부의 사업지침, 관청의 수세절목, 지방 사족층이 제정한 사창절목(社倉節目) 등 여러 종류의 절목이 있다. 비슷한 용어로 사목(事目)이 있다. 절목은 실록이나 문집에 나타나기도 하고, 단독으로 책자나 문서로 존재하기도 한다. 절목은 법조문의 범위에서 제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조선에서는 이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아 법전규정과 달라지는 사례도 있다. 사안에 따라 편찬주체도 다양하여 의정부에서 정하여 왕의 재가를 받는 것도 있고, 관청의 하급관원이나 서리들이 자의적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절목들은 조선시대 각종 제도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숙종 43년(1717) 4월 11일
지난달 초10일 약방에서 입진, 입시하였을 때에 도제조(都提調) 김창집(金昌集)이 아뢰기를
"통제사 윤각(尹慤)의 장계를 보니 거제(巨濟)의 구미산(九味山)과 소소포(小所浦) 두 곳의 솔밭[松田]에 염한(鹽漢) 박기연(朴己延)·서귀선(徐貴善)·곽운이(郭云伊)·정선이(鄭善伊) 등이 각자 솔밭 아래에 염부(鹽釜)를 설치하고 크고 작은 소나무를 가리지 않고 작벌하여 소금을 구웠다. 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추증하면, 소금 가마솥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은 거제에서는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 조선후기 어기(漁基, 고기를 잡는 곳)  
어기(漁基)를 국유토지(國有土地) 부문에 게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역시 기지(基址)의 소유라는 점이 토지와 동일하기 때문에, 참고를 위해 여기에 게재한다. 

1). 漁基는 강이나 바다에 관계없이 漁路를 확보하여 많이 잡힐 것이 확실한 곳이면 매년 漁機를 설치하여 어업(漁業)을 하는데, 이를 아무개 땅, 아무개 漁基라고 부르는 것이다. 漁基의 종류는 대개 다음과 같다.  
(1) 어장 -바다에는 大口, 靑魚, 文魚 등의 어장이 있고, 강에는 江魚, 삽라장(揷羅場)이 있다.
(2) 漁條(어조, 立船) - 단지 바다에만 있다.
(3) 防簾(방렴, 設簾) - 바다에서는 렴(簾)이라고 부르고, 강에서는 전(箭,어살)이라고 부른다. 
 
2). 漁基는 본국 國初에 전국의 漁箭(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속에 나무를 둘러 꽂아 물고기를 들게 하는 울-번역자)을 戶曹에서 조사하여, 빈민에게 급부하는 방안을 만들고, 3년마다 한번씩 교체하여 인민이 개인적으로 점유하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 제도를 개정하여 어전세(漁箭稅)를 부과하였다. 
 
3). 戶曹에서 漁基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함에 따라, 각 도의 漁基를 各宮 및 各營, 各司에서 절수 받아 이를 점거하고 수익하는 것이 둔토와 같았다. 
 
4). 英祖 경자년(庚子年, 지금부터 200년 전)에 균역청(均役廳)을 설치하여 어 염 선(漁, 鹽, 船)의 3稅를 병합하여 일체로 관리하게 하였고, 또한 종전 各宮, 各司에 소속된 어기도 역시 병합하여 이속시켰다. 그렇지만 그 후 타 관청에 이관하여 均役廳에 속하지 않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1) 이전 통제영(統制營) 소관-경상 沿海 각 군 어장
(2) 이전 진무영(鎭撫營) 소관-경기 江華 燕子洼어장
(3) 이전 통어영(統禦營) 소관-교동 칠도(喬洞 桼島)어장
(4) 이전 화량진(花梁鎭) 소관-남양만 朴與(水+與-번역자)어장
(5) 咸興 永興 양 本宮 소관-함경남도(咸鏡南道) 文川의 전체 어장, 德源의 전체 어장
 
5). 均役廳에서는 각 도의 漁基를 漁利의 후하고 박함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세금을 정해 징수함으로써 어민에게 魚採를 허락했다. 하지만 各營 소관에 속한 漁基는 各營에서 물자를 스스로 변통하고 어민을 모집하여 魚採하여 그 소득으로서 군수에 補用함이 상례였다.
 
6). 統營 소속의 가덕도(加德島) 같은 어장은 漁利가 가장 풍부하기에, 이 어장은 종래 統營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황실에 바치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이 때문에 進上漁條라고 칭했는데, 進上條의 개소는 13條로서 巨濟, 熊川 두 개 郡에 있다. 
 
7). 進上條 이외에 兵船聽, 書吏廳, 將校廳, 通引廳, 使令廳, 沙工廳 등에 부속된 漁條가 있었다. 이들로부터 얻은 것은 각각 해당 ##을 보충토록 하였는데, 이를 各廳條라고 불렀다. 각청조(各廳條)의 개소(個所)는 근래 조사에 의하면 600여 개소인데 慶尙 연해의 13개 군에 있다. 
 
8). 均役廳 소관의 海稅는 開國 503년(1894) 균역청(均役廳) 폐지 이후 탁지부(度支部)가 관리하게 되었는데, 光武 5년(1901)에 궁내부(宮內府)로 이속되었고, 동 7년(1903)에는 宮內府에서 경리원(經理院)으로 이속되었다가, 다시 동 8년(1904)에는 經理院에서 탁지부(度支部)로 환속(還屬)되었다. 
 
9). 統營 소관의 漁基는, 開國 504년(1895) 統制營을 폐지한 이후에 農商工部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조사하고 세금을 정했는데, 光武 원년(1897)에는 農商工部에서 軍部로 이속되었다. 그리고 光武 3년(1899)에 진상어조(進上漁條)는 軍部에서 宮內府로 이속되었다.
 
10). 各廳條는 開國 504년(1895) 統制營이 폐지된 이후에는 각 군청에서 담당하여 관리하거나 혹은 인민의 개인 소유로 귀착되었다. 그러나 光武 4년(1900)에 宮內府에서 이를 英親王宮에 부속시키고, 英親王宮에서 매년 관리를 파견하여 도지를 거두었다. 그런데 光武 10년(1906) 이후부터 각 청조(廳條)가 있는 각 군의 어민들이 해당 漁基는 종래 민간 소유였는데 官有로 혼입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주 호원(呼冤)하였는데,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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