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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를 지나며(過永登浦)[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홍성민(洪聖民,1536년~159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 아버지는 관찰사 춘경(春卿)이다.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에게 수학했다. 1567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한 후 대사간·호조참판·부제학·예조판서·대사헌을 역임했다. 1575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가 종계변무(宗系辨誣)의 노력을 했고, 1588년 종계변무가 이루어지자 1590년 그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선생은 전후 10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경상도 관찰사를 지내며 두 차례에 걸쳐 거제도를 순행했다. 1580년 가을에 출발하여 1581년(선조14년) 봄 음력 2월에 웅천 안골포에서 배를 타고 가덕도, 영등포(구영등) 수영지를 거쳐 율포(구율포) 옥포 지세포 조라포(구조라) 진영과 거제의 각종 누정을 모두 유람하고 느낀 점을 시로 남겼다. 선생은 시를 지을 때 표현에 치중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문장은 경서를 근거로 삼고 옛 사적을 해박하게 인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천성이 간결하고 담백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아서인지 그의 시는 티 없이 맑은 감수성이 돋보인다.

1). 영등포(永登浦, 장목면 구영등) / 홍성민(洪聖民)

樓上登如天上登 망루 위로 오르니 하늘로 오르는 것 같아
壓來煙浪碧千層 안개물결 널리 밀려 와 수없이 층층이 푸르네.
此身倘無仙家分 이 몸이 뛰어나지 못해 선가(仙家)를 닦아
兩度淸遊辦不能 두 번째 유람인데도 능하지 못해 힘들구나.
羽可化來仙可登 깃털이 날리어 가히 신선이 오르는 듯,
玻瓈披盡碧層層 수정이 쪼개져 없어지듯 층층이 푸르도다.
空中一棹眞渠力 공중의 노(棹) 하나가 진실로 큰 힘 되어
滄海飛騰我不能 넓고 푸른 바다 날아올라도 나는 할 게 없도다.
十回年際再回登 열 번째 돌아오는 신년 즈음 두 번이나 오르니
樓下銀山碧幾層 망루 아래 은빛 돌이 몇 겹으로 푸르다.
滿眼風煙眞舊面 눈 앞 가득한 저 먼 아련한 모습, 참으로 구면이라고
問渠魚鳥記吾能 물고기와 새가 묻노니 내가 적을 수밖에 없도다.

[주] 선가(仙家) : ①신선(神仙)이 산다는 집, 선관(仙館), 선장(仙莊) ②선도(仙道)를 닦는 사람 ③선인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

2). 영등포(永登浦, 장목면 구영등) / 홍성민.

舟自熊川到永登 배가 웅천으로부터 와 영등포에 도달하여 보니
玻瓈萬頃碧層層 수정같이 한없이 넓고 층층히 푸르고 푸르네.
回頭欲指曾經地 머리를 돌이켜 인도하려니 이미 그 땅을 지나가고
雲海微茫辨未能 구름 낀 바다는 희미하고 아련하여 능히 분별 할 수 없구나.

정이오(鄭以吾)선생은 시에 대한 조감(藻鑑)이 뛰어난 분이셨다. 새로운 왕조의 창업과 기강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성리학 경세론에 바탕을 두었으며, 문학적인 함축미와 회화미, 문장이 갖는 구성미가 돋보인다. 또한 정감(情感)을 중시하며 문장은 평이하면서도 기교는 별로 없으나 고아한 표현에 운율미를 갖추고 있다. 거제도 관련 시들은 평소 친분이 두텁던 박덕공이 제주목사로 임명되어 갈 때 병조의랑(정4품)으로 임명되어 함께 제주도로 가면서 지은 시들이다. 1401년 6월(음력) 경상도 웅천 소속 수군의 함정에 박덕공과 함께 타고 가덕도에서 출항하니 이들을 마중 나온 전라수사 진원세의 함대와 만나 제주로 가는 도중, 한여름 풍랑을 만나 많은 고생을 했다. 거제도 영등(구영등)포를 거쳐 견내량을 지나 남해 관음포, 순천 묘도(猫島)로 가 전라남도 고흥(강진)에서 제주도로 향하였다. <도거제견내량1401년>,<과거제영등포영1401년>,<거제2수1401년>는 뱃길 따라 가면서 지은 시(詩)이며, <과거제칠천도1404년>는 돌아오는 길에 지었다.

3). 거제 영등포영을 지나가며[過巨濟永登浦營] / 1401년 정이오(鄭以吾).

舳艫人語譁 배의 앞뒤로 떠들썩한 사람들 소리 들리고
臥聽橈聲發 누워서 노 젖는 노래 소리 듣노라
楫師能知風 뱃사공은 바람을 잘 아는데
掛席䫻殘月 돛을 펼치니 새벽달이 떠있구나.
天明出浦淑 하늘이 밝아오는 포구를 나서니
浩浩雲濤闊 구름과 바다물결이 끝없이 펼쳐 있고
潮送輕鷗來 물 위로 갈매기 가볍게 날아와
同歸不忍別 따라오면서 차마 떠나질 못하네.
回望永登島 영등도가 아득히 보이더니
倐已空中㓕 잠깐 사이에 하늘 속으로 사라져버리네.
若非乘水便 이렇게 물 위를 지나는 배편이 없었다면
窮討何由豁 궁한 싯구가 어떻게 활달할 수 있었을까?

김창협(金昌協)은 고고하고 기상이 있는 문장을 썼고, 글씨도 잘 쓴 당대 문장가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당대 명문 출신으로 상헌(尙憲)의 증손자이며, 거제유배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영등포(학산리)에서 통영으로 가다가 한산대첩을 떠올리며 다음 한시 한편을 지었다.

4). 영등포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향해가며(自永登浦乘船向統營) / 김창협(金昌協).

風借樓船便 풍차루 망루에서 배편으로 가니
天兼渤海淸 하늘도 포용하고 발해바다 고요하다.
帆開永登浦 영등포에서 돛을 달고 출항하여
棹入水軍營 수군진영으로 노를 저어 들어간다.
龍動隨旗影 이순신이 움직이니 깃발의 그림자도 따르고
鼉奔避皷聲 달아나는 왜군은 북소리에 피한다네.
長懷李統制 이순신 통제사를 늘 사모하는,
此地舊揚兵 이 지방은 옛날 군세를 떨친 곳이라지.

[주] 풍차루(風借樓) : 둔덕면 학산리 영등포 진영 내에 '풍차루'라는 누각이 있었다.

영등포진(永登浦鎭)은 본래 1392년, 고성의 구소비포에 처음 설치했다가 곧 거제 장목면으로 옮겼다. 장목영등성은 구영리 1249번지 일원으로 1998년 11월1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현존둘레는 550m, 높이 3m, 폭 4m정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24년 오아포(수군도안무처치사)․영등포․옥포 등이 거제현을 관장하였고, 1430년에 오아포에 수군 주진을 두고, 영등포와 옥포에 만호(萬戶)를 두었다. 임란 후 1623년 둔덕면 학산리로 옮겼다가 1747년 혁파되었다. 1756년 이곳이 해안방어의 요충지여서 다시 이곳으로 이설하자는 통제사 이경철(李景喆)의 장계를 받고 논의한 후, 통영 소속의 소비포진의 권관(權管)을 영등진에 옮겨 설치하고 만호로 승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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