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포스터

부산지법 형사2부(한영표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부림사건'의 유죄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58), 설동일(58), 노재열(56), 최준영(62), 이진걸(55)씨 등 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경찰 수사과정에서 상당기간 불법 구금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서 자백을 했으나 불법 구금과 자백 강요로 인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검찰 송치 이후에도 계속됐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자백의 임의성을 의심할 사유가 있다고 보아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므로, 피고인들의 학생운동이나 현실비판적인 학습행위만으로는 이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에 대해 무죄라고 판결했다.

'부림사건'으로 구속된 사람 중 국가보안법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재판부는 또 계엄법위반, 범인도피·은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 등에 대해서도 무죄 또는 면소 판결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0여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대표적 공안사건이다. 당시 20명의 교사와 학생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1982년 6월 고씨 등 5명은 징역 1년6월~6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변론을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부림사건 관련자 중 7명은 1999년 재심을 청구, 계엄법과 집시법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인정됐다. 이후 고씨 등 5명은 지난 2012년 8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편, 같은날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자살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이 확정돼 만기복역한 '유서대필' 사건의 피고인 강기훈(51)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故) 김기설이 분신자살을 하며 남긴 유서의 필적이 김기설 본인의 것이 아니라 강씨의 필적이라고 판단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른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일어났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명지대 1학년생이던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분신자살도 잇따라 일어남에 따라 이를 무마할 국면전환용 사건으로 강 씨가 희생됐다.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 씨는‘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구속됐다.

법원은 ‘유서의 필적은 김 씨가 아닌 강 씨의 것’이라는 국과수 감정 결과를 근거로 자살방조 혐의를 유죄로 판결, 이적표현물 소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더해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이에 강 씨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며 1994년 8월 만기출소했다.

강씨는 2년전 간암 판정을 받고 현재 투병 중으로 알려졌다. 23년 만에 억울함을 벗게 된 강씨는 “오늘 판결은 법원이 일련의 사건을 잘못된 것으로 봤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덤덤한 마음을 전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또, 1976년 '서울대의대 간첩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의사 9명도 38년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김종근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위반과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간첩혐의 등으로 징역형 등을 선고받은 전모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전씨 등은 서울대 의대 재학 중이던 1976년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과 ’사회과학입문’, ’대중철학’등의 서적을 돌려 읽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규탄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을 토론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자격정지 3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과 자격정지 2년 등을 선고받은 이들은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등의 형을 선고받았고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당시 유신헌법에 비춰봐도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육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가 이들을 영장없이 체포해 보안사 남영동 분실 등에서 불법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통해 진술서를 강요했다”며 국가보안법위반과 반공법위반, 간첩혐의 등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 구금과 폭행·협박 등 인권 침해가 저질러졌다”며 “이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는 위법 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들이 돌려 읽은 서적들이 반국가 단체나 공산계열 활동을 찬양·고무하는 내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종합: 일부추가 2.16.08:55>

서영천 기자  syc6871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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