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연재 고영화의 거제 고전문학
거제 해금강(海金剛)갈도(葛島), 서불과차(徐市過此) 1.[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 차례 : 1. 거제 해금강(海金剛)갈도(葛島) 한시(漢詩) 편
2. 경남의 서불과차(徐市過此)

   
 
1. 거제 해금강(海金剛)갈도(葛島) 한시(漢詩) 편

해금강은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산1번지에 있으며, 갈곶도(葛串島·葛島·加乙島)와 그 주변 121,488㎡으로 1971년 3월 23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2호로 지정되었다. 두 개의 큰 바위섬이 연접되어 이루어졌고, 높이는 116m, 총면적은 0.673㎢이다. 경치가 강원도 해금강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보는 사람들의 입으로 불리어진 이름이 해금강이다. 섬의 동남부가 깎아지른 높은 단애(斷崖)로 그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천고의 신비를 간직한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석문 일월봉, 미륵불, 촛대바위, 조도령바위, 사자바위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기암괴석의 바위틈에 천년송, 견우직녀송 등 희귀목과 동백림을 비롯하여 섬 특유의 난대성 식물이 무성하다. 특히 초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이른 아침에 바다 안개가 섬의 허리를 휘감으면 마치 부용이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해금강의 갈도(葛島)는 큰 바위 몸체가 네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이 십(十)자형 벽간수로(壁間水路)로 배가 드나들 수 있다.

조선중기 당시에는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을 감탄하며 칭송한 최고의 명칭이, 작은 봉래산 ‘소봉래(小蓬萊)’라 일반적으로 불렀는데, 거제도는 갈도(葛島)를 포함한 해금강 일대를 ‘소봉래(小蓬萊)’라 일컬었다. 이후 ‘소금강(小金剛)’이라 잠시 불리다가 조선말기 ‘해금강(海金剛)’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옛날 거제 해금강을 남부권의 삼신산(三神山)이라 하여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 보낸, 서불과 동남동녀 3,000명을 보냈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씨가 우제봉(제석봉)의 높은 절벽에 아련히 남아 있었지만 태풍으로 소실되었다 전한다. 옛 문헌 기록으로는 조선말 1881년 '이유원(李裕元)' 영의정이 거제도로 유배와서 서불과차 글씨를 보고 남긴,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에서 그 기록이 전하고 있다. 

   
 
1). 해금강 (海金剛 詩) / 옥문수(玉文銖) 거제시 연초면 출신, 1930년 동부면장.
海上金剛積不流 바다에 금강이 쌓이고 쌓여 흐르지 않아
千萬峰影一擧浮 천만 봉우리 일순간에 떠 있게 되었다네.
依希骨髓成殘島 흐릿한 골수는 여남은 섬을 만들고
磅磚精神寄遐州 웅대한 정신은 하주(먼 지역)에서 보냈구나.
天外蓬萊生遠眺 하늘가 봉래가 아득히 보이고
雲中菩薩露全頭 구름 속 보살은 머리만 드러낸다.
曾聞這裡多靈藥 들으니 저속에 영약이 많다는데
願使吾生壽百秋 원하건대 나의 삶 영원했으면.
 
2). 갈도(葛島, 해금강) / 조익찬(曺益贊) 1870년대 作.
洛洛寒松無盡處 언제나 푸른 소나무 다함이 없는 곳,
層層石壁有碁蹤 층층 석벽에 바둑판의 흔적 있다네.
徐市過此銘於蹟 '서불과차' 새겨 자취 남겼으니
仙藥應生是邑中 선약(仙藥)은 응당 이 고을에 있으리라.  

조선말기 경상우도 육군 대장이었던 조익찬(曺益贊) 장군이 해금강에 '서불과차' 석각을 보고 쓴 한시(漢詩)다. 거제도에 서불이 새긴 자취가 있으니 이 고을에는 불사초(신선의 영약)이 있었던게 아닌가? 하며, 화두를 던지고 있다.
 
3). 갈도(葛島) 금석문 / 이유원(李裕元) 1881년 作. 
葛島奇觀遠莫致 갈도는 경치가 수려하나 멀리서 오기가 어려웠는데
搨來石刻墨光秘 석각에 새긴 글을 탁본하니 먹처럼 새까만 빛이 신묘해 알기 어렵네.
可疑千載秦徐船 서불 선박이 새긴 글씨로 천 년이나 되었는지 가히 의심스럽다.
其果投毫過去誌 붓의 털끝에 의지한 결과로 지나간 과거를 기록했구려.
 
3).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 서불과차 / 月城 이유원(李裕元) 1881년 作.
이유원(李裕元)의 작품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는 1881년 거제도 유배 때, 저자가 직접 해금강(갈도)으로 배를 타고 가서 탁본을 한 후에 남긴 작품이다. 저자의 또 다른 작품 "기성죽지사"에서도 잠시 언급 하지만 거제 해금강 서불과차 증거 중에 현존하는 가장 자세하고 신뢰성 있는 기록임에는 틀림이 없다. 바둑판 위에 그려놓은 듯한 "서불" 두 글자는 비록 옛 문자이기는 해도 알아 볼 수 있으나 나머지 두 글자는 과차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글자 형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옛 서법(書法)의 일종인 도해법(倒薤法)과 백세고등(百歲枯藤) 방법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저자의 언급으로 보아, 2000 여 년 전에 만들어진 글씨체이며 서불과차의 자취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일설(문중門中 전해오는)에 의하면 秋史 김정희의 수제자 위당 신관호(威堂 申觀浩)가 스승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1840~1848년)때 필요한 물품과 함께 당대 금석문의 대가였던 스승에게 해금강 서불과차 금석문을 탁본하여 보내 의뢰했다하나 그 명확한 답은 전해지지 않는다. 당시 거제도에서 제주도까지 운송선이 있어 거제도 특산물 표고버섯을 제주도민들이 좋아해서 많이 보냈다는 기록이 더불어 전한다. 5개월의 짧은 거제도 유배 기간에 많은 것을 기록하고 거제를 사랑해주신 이유원 선생께 삼가 존경의 념(念)을 올린다. 

[“영남의 기성(거제)현 해상에 "서불과차"라는 4자가 있다는데, 여기 지역은 일본과 접해있다네. 편히 사람들이 탁본하여, 보고 말하길, "서불" 2자는 맞으나 "과차" 2자는 아니구나. 내가 보기에 "과차 2자까지 보았다" 말하며 천년을 전해 왔네. / 본래부터 작고 큰 것이 아니라 진흙에다 본떠서 새겨 표시했고, 본래부터 글자가 오래되어 긁히고 깎여서가 아니라 자연법칙에 따랐도다. 자연스럽게 그대로 베끼어 뚜렷이 남아 있는데, 몇 번의 비바람을 겪고 오래되어 희미해져 검게 되었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어찌 할 수 없어 이 방법으로 하여 새겼구나. 글씨는 도해법과 만세고등법으로 천명의 힘으로 새겼다.”]

嶺南岐城縣海上 영남의 기성(거제)현 해상에
有徐市過此四字 "서불과차"라는 4자가 있다하네.
地與日本接也 여기 지역은 일본과 접해있는데
燕人見搨本曰 편안하게 사람들이 탑본(탁본)하여, 보고 말하길,
徐市二字是而過此二字非也 "서불" 2자는 맞으나 "과차" 2자는 아니구나.
以余見言過此二字之流傳千年 "나는 과차 2자를 보았다" 말하며 천년을 전해 왔구나.
非可曰全然無據 말할 것도 없이 전혀 터무니가 없다.
以俟博古之士正之 선비(역사학자)가 정당하게 옛 일에 정통하게 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有人手持海上刻 사람이 손수 바다 위 바위에 새기니
勸我解釋字之泐 나는 애써 돌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해본다.
嗜古之士今寂寞 선비가 옛 것을 좋아하니 이제 적막한데
宛丘去後阮堂憶 언덕에서 노닐다가 돌아가신 완당(김정희)을 떠올렸다.
一紙榻出四字奇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내어 놓으니 4자가 기이하다.
金石攷訂有誰識 금석문을 헤아려 평하니 누가 알겠는가?
太古雪盡劫塵洗 태고로부터 눈 녹고 겁진에 씻기고
石棧岌岌對傾仄 돌길의 형세가 아슬아슬 위급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躋攀附貼援而踞 높은 곳을 기어올라 붙어 매달려 걸터앉아
捫歷辛苦仰脅息 더위잡고 엇걸어, 괴롭고 고통스럽게 애를 쓰면서 두려워 숨을 죽이며 머리를 쳐들었다.
二千年前丹砂痕 2천 년 전의 단사의 흔적에
上下蒼蒼同一色 상하가 다 빛이 바래 동일색이라,
嬴童惜死求神僊 허약한 아이가 애석하게도 죽으니 신선을 불렀다네.
急送徐市三山特 삼신산이 특별하여 서불을 급히 서둘러 보냈는데
三山知在東海中 삼신산은 동쪽 바다 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東海之東南海側 동해의 동남쪽 바다 곁에..   
南海遙通西雍路 남해를 멀리 통한 서쪽 길로 항해하여
秦船風利茫無極 진나라 배가 바람을 이용해서 망망한 바다를 끝없이 건너와
何日擧筆仰壁灑 어느 날 붓을 들어 높은 벽에 무늬를 새겼다.
交錯屈折淋漓墨 서로 뒤섞여 굴절되나 먹줄은 자세하고 빈틈이 없었다.

我釋不與凡人殊 나는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게 해석했다
燕士歧論偏滋惑 연사(燕士)가 천천히 논하니 유달리 의아한데
燕士原來好淹博 연사(燕士)는 본디 학식이 매우 넓고 깊어 좋아했다.
攷據之癖強哉北 습관적으로 근거를 생각해 보니 진시황제를 거스르고 달아난 것이라,
嶧山古碑岐陽皷 진시황제를 찬양한 역산의 옛 비석에는 중국 치산에서 북을 친 것 같다.  
音訓紛紜辨舊式 글자의 음과 뜻이 서로 의견이 분분하여 옛 구식(방식)으로 밝힌다.
許氏說文何爲作 중국 후한시대 허신의 설문은 무엇 하러 지었는가?
滕公槨銘斷以臆 한나라 하후영은 관 외부에 새겨 막힌 것을 해결했다는데
非有定見各立門 일정한 주견이 없이 각기 문호를 달리하니
此言亦或彼言或 이 말도 또한 괴이쩍고 저 말도 그러하다 (의견이 분분하다)
人莫信夫我之言 사람은 지아비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게 나의 견해다
未可自信愚一得 자신을 믿지도 못하면서 하나를 얻는 어리석음이라..
史佚伯喈不復起 중국에서 사관의 일을 하던 백개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는데
咄咄無人入閫域 뜻밖의 일에 놀라 사람들이 없어져, 문지방의 경계에 들어왔다네.
大都書法如觀海 대도시에는 글 쓰는 법의 식견이 넓은 것 같다.  
 
浩浩澎澎深不測 끝없이 넓은 바닷물이 철석철석, 헤아릴 수도 없이 깊은데
後代剽竊章句徒 후대에서 표절하여 문장의 단락이 헛되었구나.
敢言秦漢石墨勒 감히 말하건대 진나라 한나라는 흑연 금속광물에다 새겼다하네
不尋正畫事弔怪 정당한 계책으로 찾지 않고 사고를 조문하니 이상하다.
失於元氣耽於蝕 원기를 잃어버리니 좀먹는 것을 탐하구나.
小大本非泥䂓矩 본래부터 작고 큰 것이 아니라 진흙에다 본떠서 새겨 표시했고
剝落本非從典則 본래부터 글자가 오래되어 긁히고 깎여서가 아니라 법칙에 따랐다.
天然寫出宛然在 자연스럽게 그대로 베끼어 완연(뚜렷)하게 존재했는데
幾經風雨沉晦黑 몇 번의 비바람을 겪고 오래되어 희미해져 검게 되었구나.
世降莫可爲此法 세대가 내려갈수록 어찌 할 수 없어 이 방법으로 새겼어라.
倒薤枯藤千觔力 글씨는 도해법과 만세고등으로 천명의 힘으로 새겼다.  
 
卽之凜凜鐵斬截 늠름하게 나아가려고 무기로 목을 베고 손을 끊듯이
望之烈烈巖崱屴 열렬하게 바라보니 바위가 쭈삣하고 높이 솟아 있다.
噩浪不擊怒鯨鬐 파도에 놀라 지탱하지 못하니 고래의 갈기가 곤두서며
積風不磨飛鵬翼 바람이 심하여 돌을 갈지 못하니 붕새가 날개로 날구나.
參造化者宜悠久 살펴보니 (글자가)조화롭고 마땅히 연대가 길고 오래 되었으나
絮雩漠漠神鬼嗇 막막하여 기우제 올리길 머뭇거리니 귀신도 인색하구나.
痴矣放去一男兒 어리석게도 한 사내아이를 내쫓아 버려
任他表記水程直 제멋대로 표기하여 뱃길이 곧게 되었다구나.
非獨過去留纍纍 다만 과거에는 겹겹이 쌓여 머물렀다한다.
堪笑意思何忮忒 마음먹은 생각이 가소로우니 어찌 사납고 악하겠는가?
他人莫窺我山川 다른 사람을 엿보지 아니하고 나는 산천을 보노라.
不恃其險恃其德 그것이 험준하여 믿지 못하나 그 큰 덕은 믿는다.
如今徒作紙上見 지금 종이 위를 보며 곁에서 작성해보니
奇觀不貧海外國 훌륭한 장관은 해외의 나라보다 부족하지 않구나.
 
[주1] 완구(宛丘) : 사방이 높고 중앙이 낮은 것을 완구, or 중국 지명 중 하나.
[주2] 완당(阮堂) : 추사 김정희, 철종 2년(1851년) 이조참판 김정희가 거제에 귀양 왔다고 하나 사실이 아니다. 또한 해금강 금석문을 탑본(搨本)했다하나 이도 근거 없음.
[주3] 겁진(劫塵) : 천지(天地)가 온통 뒤집힐 때 일어난다고 하는 먼지
[주4] 단사(丹砂)=주사(硃砂). 천연적(天然的)으로 나는 유화수은 짙은 붉은빛의 광택(光澤)이 있는 육방정계(六方晶系)에 딸린 덩어리로 된 광물(鑛物).
[주5] 삼신산(三神山) : 중국 전설에서 보하이 만[渤海灣]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의 3산.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다. 〈사기 史記〉에 의하면, 이곳에 신선이 살고 있으며, 불사약(不死藥)이 있다 하여 시황제(始皇帝)와 한(漢) 무제(武帝)가 이것을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보냈으나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일이 유명하게 전해 내려온다.
[주6] 연사(燕士) : 잔치(향연)에 온 선비. 중국 연나라 장사(사졸), 연나라 장사.
[주7] 여산(嶧山) : 진나라 승상 이사가 여산(역산)의 돌에 진시황제를 찬양하는 글을 새김.
[주8] 기양(岐陽)/치양 : 중국 산시 성(陝西省)의 치산 산(岐山山) 남쪽에 있는 지역. 주나라 성왕이 엄(奄)나라를 무찌르고 돌아오는 길에 제후들을 모아 사냥한 곳이다.
[주9] 허씨(허신)설문(許氏說文) : 고대 중국 후한시대 학자 허신(許愼)이 한자의 육서 이론을 확립하였음. 육서 (상형(象形),지사(指事),회의(會意),형성(形聲)/전주(轉注),가차(假借).
[주10] 등공(滕公) : 한 고조 유방의 고향사람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하후영의 별칭이다. 그가 죽어 장사 지낼때 공경들이 상여를 따라 도성의 동문밖에 당도하자 말이 더 이상 가지않고 땅바닥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그곳을 파보니 석곽이 나왔는데 거기에 "암울했던 가성이 삼천년만에 태양을 보았도다. 아~ 등공이여 이집에서 살지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거기다 묻었다 한다.
[주11] 백개(伯喈) : 최초로 비백체(飛白體)를 창조한 서예가, 동한의 채옹(蔡邕)의 자이다. 133~192년. 문학가이면서 서예가이고 용필법을 논술한 비결을 얻었다. 마치 마른 붓으로 씌어진 체세처럼 신령함과 묘함을 다하여 고금에 독보적이다.
[주12] 도해(倒薤) : 서법(書法)의 일종. 도해전(倒薤篆) : 신선(神仙) 무광(务光)이란 사람이 부추가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지었다. 은은한 자태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것이 마치 교녀(鮫女)가 이별의 눈물을 흘릴 때 눈물방울이 알알이 진주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주13] 고등(枯藤), 만세고등(萬歲枯藤) : 세로획에 대한 용필의 비유로, 세로획을 서사할 때 용필은 힘차고 굳센 것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용필이 힘차고 굳센 것을 가리킨다. 이를 ‘백세고등(百歲枯藤)’이라고도 한다. 매번 하나의 세로획을 쓸 때는 만년이나 지난 마름 등나무와 같이 해야 한다. 시작과 끝이 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것이 마치 황하(黃河)가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와 중원(中原)을 관통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도해(倒薤)법, 만세고등[萬歲枯藤=백세고등(百歲枯藤)] 혼합한 글씨체. 세로는 가늘고 꾸불꾸불하게, 또한 눈물 방울 같이 알알이 떨어지는 진주 같은 글씨이며, 과두문자와 유사하고 약간 변형된 글씨체이다. 

   
 
4). 거제유람길 김창협(金昌協)
김창협(金昌協,1651~1708년)은 고고하고 기상이 있는 문장을 썼고, 글씨도 잘 쓴 당대 문장가이다. 그의 저서 농암집(農巖集)에는 전국 유람 길에 나서며, 경유하는 지역마다 느낀 바를 한시로 남겼다. 형 김창집 선생은 1722년 거제로 유배되었고 약 30년 후 거제 반곡서원에 제향 되었으니 여하튼 거제와 인연이 깊은 형제이다.  

1700년 전후 어느 해 10월초(음력) 겨울날, 김창협(金昌協)은 통영 앞바다를 거쳐 영등포진영을 둘러보고 다시 남쪽 바다 해안 길을 따라간다. 가배량 옛 오아포 우수영진영에 잠시 머문 후, 해금강(갈도, 소봉래)의 칭송을 듣고 율포진영을 거쳐 해금강으로 향하며 여러 시편을 남겼다. [해행(海行)]은 율포진영에서 해금강까지 4수(四首)의 7언율시로 선생의 마음을 표현했으며, [해상관일출(海上觀日出)]은 거제수군진영에서 저물녘 바닷가 풍경을 그려냈다.

먼저 해행(海行)의 한시(漢詩)의 내용을 살펴보자. 빙 둘러 지체되는 바닷길의 수고로움에 그 옛날 『장자』에 나온 이야기, 즉 물고기가 새가 된 곤붕화(鯤鵬化)를 떠올린다. "북녘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이 물고기가 변신을 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을 鵬(붕)이라고 한다. 이 붕새의 등 넓이는 이 또한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온몸의 힘을 다해 날면 그 활짝 편 날개는 하늘 한쪽에 가득히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 天池이다." 원래 바다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며 부자로 만들거나 가난하게 만든 수도 있다. 따라서 바다란 마냥 믿고 편안하게 여기거나 일상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 바다는 곤(鯤)이 붕새로 변하는(鯤鵬化焉) 곳이고 이무기와 용이 숨어 있으며 만 가지 보물이 감춰진 보고다. 또한 배를 삼킬 수 있는 거대한 물고기가 노니는 곳이다.

조선중기 당시에는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을 감탄하며 칭송한 최고의 명칭이 ‘작은 봉래산 ’ 즉 ‘소봉래(小蓬萊)’라 일반적으로 불렀는데, 거제도는 갈도(葛島)를 포함한 해금강 일대를 ‘소봉래(小蓬萊)’라 일컬었다. 이후 ‘소금강(小金剛)’이라 잠시 불리다가 조선말기 ‘해금강(海金剛)’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선생은 해금강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깎아지른 벼랑에 늙은 솔(松)이 서 있고 기암괴석이 여기저기, 바위는 하늘의 풍골처럼 솟아있다. 예전에 금강산에서 본 모습과 자못 유사하다.”

◯ 해행(海行) 해변을 따라가며. 四首 中 三首 편 / 김창협(金昌協,1651~1708년)
絶岸古松離離起 벼랑의 늙은 솔은 얼기설기 서 있는데
繫馬下觀滄溟水 말고삐 매어두고 너른 바다 굽어보네.
却立奇石森成峰 여기저기 기암괴석 산봉우리 이루었고
戍削磊砢天骨峙 깎아질러 쌓인 바위가 하늘의 풍골처럼 솟았도다.
毘盧衆香昔登臨 비로봉(毗盧峯)과 중향성(衆香城)을 일찍이 올랐는데
見此雖小頗相似 여길 보니 작지만 자못 서로 유사하다.
焉得好手如鄭䖍 어떻게 정건 같은 솜씨 좋은 화가 얻어
歸寫吾家素壁裏 돌아가 우리 집의 흰 벽에 그려볼꼬.
地名小蓬萊 이 곳 지명이 ‘소봉래’이다.

[주1] 비노중향석등림(毗盧衆香昔登臨) : 비로봉과 중향성은 금강산의 여러 명승지 가운데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인데, 작자가 21세 때인 1671년 가을에 유람을 다녀왔다.
[주2] 정건(鄭虔) : 당대(唐代)의 산수(山水) 명화가. 미관말직의 신분으로 두보(杜甫)와 우정을 나눈 사이로서, 당 현종(唐玄宗)으로부터 시(詩),서(書),화(畵)의 삼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5). 거제도 해금강 / 1928년 7월14일 동아일보
(1) 저구리에서 15리쯤 떨어진 갈도(葛島)가 있으니 거제도 사람들이 ‘해금강’이라 부른다. 찬란한 석양빛을 전신에 바른 적발흑면(赤髮黑面, 붉은 머리칼에 검은 얼굴)의 부인 한사람이 하염없이 바위 위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인어인가 생각하였더니 기실은 남쪽 바다를 향해 자기 고향을 바라보고 울고 있는 제주해녀이더이다. 해금강이란 이름은 조선중엽 무명의 화가가 그린 거제해금강과 통영군지에 거제 해금강 절경이라 칭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2) 수려한 풍광, 남해의 절경!! 그지없는 맑은 에머랄드 푸르름을 만끽하고, 이글거리는 태양빛에 두둥실 떠 있는 해금강은 거제의 보배이다. 만년풍파에 닳고 닳은 기암괴석, 고운 진주가 구르듯 물결이 은파(銀波)로 깨어지는 곳, 십자동굴로 들어서면 한더위에 지친 체온을 싸늘하게 만드는 곳, 바로 이곳이 거제 해금강이다. 하늘과 바다 끝이 닿은 저 멀리 일본 대마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러한 절경은 하늘이 거제시민에게 베푼 소중한 자산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해금강에 살어리랏다.
소라전복 굴조개랑 먹고 해금강에 살어리랏다.
홍진(紅塵)에 썩은 명리(名利)야 아는 체나 하오리까.
갈도를 그리는 마음 향수만 짙어가네"

◯ 거제 해금강(海金剛) / 고영화(高永和)
斲破千仞斷崖麓 천 길 낭떠러지 기슭을 파고 깎은 곳,
海邊奇巖點點浮 해변에는 기이한 암석 점점이 떠있네.
滄海絶境終誰至 넓은 바다 이 절경 누가 와서 차지할 건가?
閱盡滄桑不勝愁 온갖 변고 다 겪고도 시름을 이길 수 없구나.
欲問徐市千古事 먼 옛날 있었던 서불의 일 묻노라니
葛島樓船採藥遊 갈도까지 누선타고 선약 캐려 떠돌았다네.
扶桑咫尺天盡頭 부상(扶桑)의 지척, 하늘 끝머리에서
絶景無事不風流 절경(絶景)보니 풍류 아닌 일이 없어라.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앤거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