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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노래(蜜蜂歌)[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벌꿀(蜂蜜)은 유자 수달피 표고버섯 대구어 등과 함께 거제도의 오래된 진상품 중에 하나이다. 성종 1481년 동국여지승람, 1530년 중종 신증동국여지승람, 1759년 거제부읍지(巨濟府邑誌), 1864년 거제부읍지, 1899년 거제군읍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거제 토산품이다. 벌꿀은 동의보감에서, '독을 풀어주고 장을 부드럽게 해서 배변을 돕는다'고 소개되고 있는 만큼 몸의 해독작용을 돕고 피로회복, 면역력 강화, 추위예방 효과가 있다. 문헌상으로 가장 괄목할 만한 기록은 삼국시대에 우리나라 양봉기술이 꿀벌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다한다.

1506년 이행(李荇)이 말하길, “거제토박이들이 산의 벌집을 잘 찾아내어 꿀을 채취하는데 그러면 벌이 대개 굶어 죽는다. 한 승려가 굶주린 벌이 무리 지어 모인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항아리 속에 넣고 꿀을 주어 길렀더니 드디어 살아났는데, 이듬해에 벌들이 항아리 가득 꿀을 쳐 놓고 떠나갔다” 한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는 "꽃을 따서 만드는 꿀은 엿과 같구나. 기름과 마찬가지로 그 용도(用途)가 한이 없다. 사람들이 염치없이 다 긁어내니, 네게 죽지 않는 한,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 모르리라[採花作蜜 惟飴之似 與油作對 其用不匱 人不廉取 罄倒乃已 汝若不死 人欲奚旣]"하였다.
 

   
 
1). 꿀벌의 노래(蜜蜂歌) / 이행(李荇). 거제시 상문동.
꿀벌(蜜蜂)은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 미물이다. 꽃가루를 수분시켜 열매를 맺게 하고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제공한다. 옛날에 꿀벌을 기르는 자가 있었다. 꿀벌보다 특히 큰 놈이 여왕벌인데 주인이 그것을 몰랐었다. 어느 날 그 여왕벌이 밖에 나갔다가 제 집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주인은 딴 종류의 벌이 꿀벌을 해치려는 줄 알고 죽여 버렸다. 그랬더니, 며칠 뒤에 꿀벌이 모두 여왕벌의 주위에 모여서 단란(團欒)하게 죽으니, 주인이 이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한다. 언젠가 양봉 벌통에 큰 말벌 한 마리가 침범하자 순식간에 벌통 속에 있던 꿀벌들이 모두 나와서 말벌에 맞서다 수백 마리가 죽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말벌도 죽었다. 여왕벌과 벌통을 지키고자 스스로의 생명을 던진 고귀한 죽음이었다. 예전 사대부 신하들은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부지런히 임금만 섬기는 꿀벌을 지조와 충성의 사표(師表)로 삼았다.

一圍枯木天空中 반공에 높이 솟은 아름드리 고목
蜜蜂作蜜來往通 꿀벌이 꿀을 모으느라 오고 가누나.
歲華已晩筋力微 한 해도 저물어서 근력이 미약하지만
經營寧避雨與風 일을 할 적엔 어찌 비바람을 피할쏜가.
曾房歷歷臺殿同 겹겹이 포갠 방들 궁궐과도 같으니
制作一一偸天工 그 모양이 일일이 조물주 솜씨로구나
君臣有禮不可亂 군신 간에 예가 있어 문란치 않으니
豈謂微物無其衷 어찌 미물이라 충심이 없다 하리요.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山中花草自香美 산중의 화초 절로 향기 아름다우니
養子多在崖石裏 바위 벼랑 속에 많이들 새끼쳤구나.
世人重利輕生生 사람들은 잇속 중시해 삶을 경시하고 살지만
斫蜜不問蜂餓死 꿀을 치느라 굶어 죽는 것 아랑곳 않구나.
嗟哉蜜蜂愼莫疏 아~ 꿀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
甕中慈悲誰更如 항아리에 남긴 자비 뉘라서 따를쏜가.

   
 
거제시 상문동 바위 벼랑에 아름드리 고목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그 벼랑 바위 틈 사이에 큰 벌집이 있어 꿀벌들이 부지런히 꿀을 모으느라 오고가고 있다. 옛 거제도에도 재래꿀벌인 한국 토종벌이 나무나 바위틈에 벌집을 수직으로 만들고 살았다. 토종 야생벌은 바위틈에 집을 짓고 꿀을 모으는데, 그 자연의 꿀을 석청꿀이라 한다. 보통 토종꿀이 1년에 한번 정도 꿀을 따는데 비해 석청꿀은 2∼3년에 한 번씩 꿀을 딴다. 그 덕에 훨씬 더 진하고 향기로운 꿀을 얻을 수 있다. 야생벌이 좋아하는 벌집의 위치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습기가 없는 양지바른 곳과, 높은 벼랑 돌 틈 사이의 공간을 좋아한다. 야생벌은 영리하고 생명력이 강하지만 벌의 숫자가 한 집에 너무 많을 경우 겨울이면 다 얼어 죽기도 한다. 야생꿀은 생산량이 적으나 채밀활동이 부지런하고 내한성이 뛰어나 아시아 각국에서 지금도 개량 사육하고 있다.

2). 밀봉시(蜜蜂詩) / 이익(李瀷,1681년~1763년).
殉國忘身卽至誠 나라 위해 몸 바치니 참으로 지성이로다.
勞心事上獵羣英 마음껏 여왕님을 섬기려고 뭇 꽃송이에 사냥을 간다.
牧丹叢裏何曾到 곱게 핀 모란에는 왜 한 번도 아니 오느냐 하면
應避花中富貴名 꽃 가운데 부귀화(富貴花)라 이름 띤 걸 피하기 위함이네.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부귀화(富貴花)라고 부르는 모란도(牧丹圖) 그림을 보고 모란이 향기 없는 것(牧丹無香)을 알고서 이르기를, “절등하게 고와도 벌과 나비는 찾아오지 않겠다.” 했으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다만 꿀벌이 없는 것은, 꽃은 곱지만 냄새가 나쁘기 때문이다.

   
 
3). 봉왕(蜂王) 여왕벌 / 이익(李瀷,1681년~1763년).
蜂王種子蜂臣服 봉왕은 종자 있어 봉신이 복종하니
王座高居俯衆生 권좌에 높이 앉아 중생을 굽어본다.
未必仁恩覃被廣 어진 은택은 널리 골고루 입히지 못해도
尊卑天得理分明 높고 낮은 질서는 제대로 지키고 있다.
金甌天地隙中開 사발만한 한 나라를 통 속에다 벌였어도
威德風行四到來 위엄과 덕이 행해져서 온갖 군사 몰려든다.
早晏喧聲雷若沸 이르거나 늦거나 우레같이 뒤끓으니
應知宮府放衙催 궁부에 내린 명령을 각 기관에서 재촉하는 듯하구나.

쏘는 벌레로서 어질고 착하기는 꿀벌 같은 것이 없는데, 더구나 이 꿀벌은 딴 벌레와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 여왕이란 벌은 위에서 하는 일 없이 편하고, 일벌들은 밑에서 온갖 노력을 하며, 오직 여왕벌만 섬긴다. 그 충정(忠情)과 의리(義理)는 사표(師表)가 될 만하다.

우리사회에는 꿀벌에 미치지 못하는 자가 많다. 더구나 시운(時運)이 옮겨가는 때를 당하여 말을 바꾸고 얼굴을 고쳐서 후세의 비난을 받은 자는 족히 더불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니 오직 꿀벌만이 신념과 정의 성실의 거울이다.

또한 꿀벌은 온도에 참 민감하며, 생산한 벌꿀은 가공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최고의 웰빙 식품이다. 지구상의 농작물 70%가 곤충에 의해 수분되는데 그 중 절반이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만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 했던 모양이다.

   
 
우리고유의 과자 중에 ‘약과(藥果)‘가 있는데, “약 약(藥)”자와 “과일 과(果)”자를 쓴다. 과자를 과일이라고 하고 약이라고 덧붙였다. 약(藥)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이유에 대해서 정약용은 우리말에서는 꿀을 약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원래 꿀로 담근 술이 약주이고 찹쌀을 꿀에다 버무린 것인 약밥이며 밀가루를 꿀에 버무려 과일처럼 빚은 과자가 약과다. 제사상에는 반드시 약과를 놓는다. 이유는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음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 나라 송옥(宋玉)이 굴원(屈原)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노래인 초혼부(招魂賦)에 신하가 죽은 임금을 그리워하며 ‘거여’와 ‘밀이’라는 음식을 차려 놓았으니 돌아오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거여와 밀이는 밀가루로 만든 떡에 엿과 꿀을 발라 말린 음식이라며 이를 약과의 원형으로 보았다. 그러니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초혼의 음식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년) 선생은 그의 저서『성호전집(星湖全集) ‘봉밀찬(蜂蜜贊)’에서 “한 번 쏘고는 다시 살지 못하는 꿀벌의 용기는 자신을 위함이 아니다. 만약 만물이 더불어 다툼이 없다면, 하여간 그 인자함이라 하리다.”[螫不復生 勇非爲身 物與無競 何如其仁]. 꿀벌의 용기와 희생은 그 어짊에 있다고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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