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연재 고영화의 거제 고전문학
거제민요 ‘동그랑땡’과 백조요(百鳥謠)[연재]고영화의 거제도 고전문학

   
 
(1) "동그랑땡"과 통영동이(統營童)
조수삼(趙秀三)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는 칠언절구 시를 덧붙인 형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중에 '통영동이(統營童)'편에 실린 짧은 내용 속에는, 우리나라 민요 "동그랑땡(똥그랑 뗑, 댕그랑 땅, 댕그랑 땅, 둥구렁뎅)”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

절름발이에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통영출신 아이(統營童)가 '백조요(百鳥謠)'를 부르며, 잃어버린 아우를 찾아 전국을 유랑하며 구걸하는데, 그 내용이 오늘날 전국적으로 불리어지게 된 민요임을 알 수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교수 뿐만 아니라, 통영동이의 사연을 김태준, 이명선 학자가 민요와 관련된 이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1926년에 창간되었던 월간 취미잡지 "별건곤 제2호", 효산(曉山)의 작품 "동그랑땡!(동그랑땡!)" 사설에도 비렁이가 처량한 소리로 노래하며 구걸하는 통영동이 이야기가 담겨있다. "샛가만 얼골에 때뭇고 피무든 헌누덕이를 걸처입고 부러진 막댁이 집행이 삼어 두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 손님 저 손님 압헤가 떨리는 반벙어리 소리로 노래 부르며 한푼 두푼 애걸하는 소리를 드르리라."

조선후기 정조 1801년 사료(신유사옥)에도 통영동이가 언급되는 바, 최소 210 여년 前,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란 통영동이가, 동생을 찾아다니며 부른 새 타령이 전국으로 퍼져, ‘둥구렁뎅(동그랑땡)’ 유희요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절름발이 비렁이가 노래하며 구걸하는 자들을 모두 "통영동이"로 불리고 있어, 동그랑땡 후렴구를 사용해 노래 부르며 구걸하는 자, 모두가 '통영동이'로 불리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대부터는 옛 통영동이의 사연은 잊혀진 채, 민중의 흥겨운 가창유희요로 재탄생되기에 이른다. 각 지역마다 민요의 특징인, 상황에 따른 각색이 이어져 오면서 현재까지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전국적인 유행민요인 ‘동그랑땡’은 거제도는 물론 통영고성에서도 이 민요가 수십 년 전까지 불리어졌다. ‘동그랑땡’은 도넛모양의 원 두 개를 그려놓고, 어린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노래 부르면서 즐기는 놀이이다.

(2) 통영동이(統營童) / 조수삼(趙秀三) 1762년∼1849년,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통영동이(아이)는 성도 이름도 모른다. 스스로 통영동이라고 불렀다. 아이는 한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다. 10세 때 그 아우를 잃었다. 밤낮으로 울어 두 눈이 모두 어두워졌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뒤로 이에 전국 팔도로 동냥하며 두루 다녔다. 혹여 아우를 만날까 희망하며. 스스로 '백조요'를 짓고 다음과 같이 불렀다. "꾀꼬리는 노래를 잘해 첩 삼기에 제격이요 제비는 말을 잘하니 종년 삼기 제격이네. 까치 깃털은 아롱져 금부나장이 제격이요 황새 목은 길어 포교가 제격일세." 길조를 나타내는 온갖 새 이름으로, 옛날에는 관직을 기록한 저의가 있었다.

[統營童 不知姓名 自呼曰統營童 童跛一足 十歲時失其弟 晝夜泣 兩目皆眊 及父母俱歿 乃行乞徧于八省 冀或逢其弟 自作百鳥謠 如曰 鶯善歌宜妾 燕能言宜婢 鵲衣斑宜禁皁 鸛頸長宜捕校 數盡羽族 有古紀官底意]

鶯歌鷰語選姬鬟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말을 첩과 종년으로 열거하고
三百飛禽總紀官 삼백의 날짐승이 모두 벼슬이름일세.
唱斷鶺鴒雙下淚 애끓는 할미새 노래 부르며 두 줄기 눈물 흘리는데
弟兄何日更相看 형제가 언제 다시 만날까?

[주] 저자, 조수삼(趙秀三) : 1762년(영조 38)∼1849년(헌종 15).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본관은 한양(漢陽). 초명은 경유(景濰). 자는 지원(芝園)‧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경원(經畹). 구자균(具滋均)은 《한국평민문학사(韓國平民文學史)》에서 그의 신분을 서리(胥吏)일 것이라고 추정하였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대개 역과중인(譯科中人)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분의 제한으로 1844년(헌종 10) 8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하였다.

특히, 조인영‧조만영은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추인물이었는데, 조수삼의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관력(官歷)이 없는 조수삼의 생애는 여행으로 특징지어지는데, 1789년(정조 13) 이상원(李相源)을 따라 처음으로 중국에 간 이래 여섯 차례나 연행(燕行)하여, 당대 중국의 일류문사인 오숭량(吳崇梁)‧유희해(劉喜海)‧강련(江漣)‧주문한(朱文翰) 등과 사귀었다. 그리고 전국에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국내 각지를 빠짐없이 여행하여 많은 시들을 남겼다.

그의 시는 대개 전기‧후기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기에서는 생활주변이나 자연을 소재로 하여 대상과의 조화를 추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나, 후기로 올수록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아지며, 장편시들도 눈에 뜨이게 양산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김정희는 두보(杜甫)의 시풍과 근접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구도올(西寇檮杌)〉, 관북지방을 여행하면서 당시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파한 〈북행백절(北行百絶)〉 등이 이러한 시풍을 대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석고가(石鼓歌)〉‧〈억석행(憶昔行)〉‧〈병치행(病齒行)〉 등도 장편거작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주로 당시의 도시하층민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산문으로 쓰고 칠언절구의 시를 덧붙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추재기이(秋齋紀異)〉, 중국 주변의 여러 나라에 대한 짧은 산문과 시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 등은 한문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이다. 저서로는 《추재집》 8권 4책이 있다.

   
 
(3) 통영동이와 정약용
1801년 2월, 천주교도들이 역모를 꾀했다는 신유사옥이 일어났다. 정약용의 매부 평택현감 이승훈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이승훈이 체포되자 형부 관원들은 한양의 정약용이 통영동이와 미리내(해실바실 웃고 다니는 15살 계집아이의 별칭, or 은하수, “내”는 시내, 미리는 미르의 변형된 말로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를 이용해 곳곳에 교리를 전파했다고 아뢰어 관직이 박탈당하고 유배길에 오른다. 당시 한양에서 통영동이가 백조요(百鳥謠)를 불렀는데, 내용의 일부가 다음과 같다.

"장끼란 놈은 복색이 좋으니 별군직으로 돌려라,  동그랑땡 동그랑땡 
따오기는 나무를 잘 파니 목방편수로 돌려라, 동그랑땡 동그랑땡 
앵무새란 놈은 말을 잘하니 연설쟁이로 돌려라, 동그랑땡 동그랑땡"

(4)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교수 해설

안대회 교수의 저서에 실린 내용을 소개한다. 안교수에 앞서 통영동이의 사연을 민요와 관련지어 이해한 학자는 김태준과 이명선 두 분이 계셨다. 일제 때의 저명한 국문학자인 두 분은 통영동이가 불렀다는 노래가 당시에도 불리는 것임을 확인하고서 채보해두었다. 그 가운데 김태준이 야담의 기원을 설명하는 논문인 ‘야담의 기원에 대하여’에서 소개한 채보 내용을 보자.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평양 기생으로 돌려라 댕그랑 땅 댕그랑 땅제비란 놈은 사설을 잘하니 종년으로 돌리소 댕그랑 땅 댕그랑 땅까치란 놈은 물색이 좋으니 사령청으로 돌리소 댕그랑 땅 댕그랑 땅황새란 놈은 모가지가 길으니 월천군(越川軍)으로 돌려라 댕그랑 땅 댕그랑 땅.”

이명선은 등사한 책의 뒷부분에 넣은 [주]에서 김태준의 채보와 거의 비슷한 노래를 밝혀놓았다. 다만 후렴구인 “댕그랑 땅 댕그랑 땅”이 앞으로 와서 “똥그랑 뗑 똥그랑 뗑”으로 불린다고 했고, 까치의 ‘사령청’이 ‘수청기생’(守廳妓生)으로 되어 있다. 이 후렴구 때문에 온갖 새를 묘사한 이 <백조요>는 보통은 ‘둥구렁뎅 노래’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있다. 또 ‘돌려라’라는 끝말이 나오기에 ‘돌려라 노래’로도 불린다. <조선구전민요집>(1933)에 서울의 누상동에 사는 김지연씨가 부른 노래인데, 황새 제비 다음 부분이다.

"솔개란 놈은 눈치가 좋다고 보초군사로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까마귀란 놈은 복색이 없다고 도감포수로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딱따구리란 놈은 파기를 잘한다고 나막신쟁이로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거미란 놈은 엮기를 잘 쳐서 석쇠쟁이로 돌려라. 돌려라 동구랑테 동구랑테"

   
 
다음은 <악부>(樂府)란 가집(歌集)에 실린 <동굴타령>이란 노래에 가장 많은 23종의 새가 등장한다. 1933년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진 이용기(李用基)란 분이 편집한 가집이다.

“장끼란 놈은 복색이 좋으니 별군직으로 돌려라.
두루미란 놈은 대가리가 붉으니 함한님으로 돌려라.
따오기란 놈은 나무를 잘 파니 목방편수로 돌려라.
솔개미란 놈은 눈치가 빠르니 포도부장으로 돌려라.
참새란 놈은 까기를 잘하니 군밤장사로 돌려라.
까치란 놈은 복색이 이상하니 금부나장이로 돌려라.
땟저구리란 놈은 낭글 잘 후비니 나막신 우비료 장사로 돌려라.
앵무새란 놈은 말을 잘하니 연설쟁이로 돌려라.
명매기란 놈은 성품이 우악하니 불한당 괴수로 돌려라.
매란 놈은 차기를 잘하니 초남태(初男胎) 집는 재리로 돌려라.
원앙새란 놈은 둘이 다니기를 좋아하니 쌍둥중매로 돌려라.
부엉이란 놈은 팔자가 사나우니 단독 홀아비로 돌려라.
올빼미란 놈은 밤눈이 밝으니 승야월장(乘夜越牆)하는 놈으로 돌려라.
비둘기란 놈은 의가 좋으니 판관사령으로 돌려라.
뻐꾸기란 놈은 피눈물이 잘 나니 유복자 잃은 청년 과부로 돌려라.
짐새란 놈은 사람을 잘 죽이니 색기장 망나니로 돌려라.
할미새란 놈은 깝쭉대기를 잘하니 동경 깍쟁이로 돌려라.
기러기란 놈은 편지를 잘 전한다니 우편 사령으로 돌려라.”

   
 
(5) 동그랑땡! (동그랑땡!) / 별건곤 제2호, 1926년 12월.
1926년 12월 01일, 별건곤 제2호(1926년에 창간되었던 월간 취미잡지)에 실린 '효산(曉山)'의 작품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한많은 비렁이의 구걸 노래에 '동그랑땡'이 후렴구로써 사용되었으나 새 노래는 간곳없고 자신의 신세타령을 열거해 동정심을 유발한다. 또한 당시 구걸하는 비렁이와 서기 1800년 '통영동이(統營童)'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있다. 하지만 가슴 아픈 사연만큼은 너무나 다르다. 1926년 효산(曉山)'의 글을 읽어보자.

◯ 단풍닙 갈때꼿에 찬바람 쓸쓸한 심양강(潯陽江) 머리, 백락천(白樂天)이 살어 잇엇더면 강상에서 울려오는 경성녀(京城女)의 타는 비파소리를 듯고 『널 위하야 비파행(琵琶行)을 쓸터이니 다시 안저 한 곡조를 더 타다오.』하던 노래를 불을만한 느진 가을날 님떠러 저 가지 드믄 동대문 밧 청량사(淸凉寺) 깁흔 골목을 차저 드러가보라.

숙 그런머뤀¬ 샛가만 얼골에 때뭇고 피무든 헌누덕이를 걸처입고 부러진 막댁이 집행이 삼어 두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 손님 저 손님압헤가 떨리는 반벙어리 소리로 노래부르며 한푼두푼 애걸하는 소리를 드르리라. 그 비렁이는 허리를 굽신하고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똥그랑 땡! 똥그랑 땡! 뒷동산의 박달나무는 작은아씨네 홍독개 방망이 깜으로 다나간다.
똥그랑 땡! 똥그랑 땡! 뒷동산의 할미꼿은 늙으나 젊으나 고부라젓네 똥그랑 땡! 똥그랑 땡!"

그러나 그 소리는 그러케 잘 하는 소리가 못되지만 그래도 그는 가장 득의양양 한드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르고잇다. 한창 이와가튼 노래를 몃곡조 부르고는 노래의 머리를 다른 곳으로 두른다.

"똥그랑 땡! 똥그랑 땡!
여러분네 손님들아! / 여러분네 손님들아!
내 신세를 드러봄쇼! / 내 신세를 드러봄쇼!
나도나도 전날전날 / 네 전날은 경긔도라 양주따에
천석군이 부가자(富家子)로 / 호의호식 남부럴 것 업섯다네
이팔청춘 조흔때에 / 량가규수 짝을어더
금실우지 즐겻더니 / 엄마엄마 우리엄마
새며느리 보기실타 / 탈을 잡어 내여쫏차
30년간 춘풍추월 / 나 혼자서 그렷다네"

지금까지 웃고듯던 손님들도 노래가 여긔까지 이르르매 누구나 다가치 얼골에 엄숙하고 처연(凄然)한 빗이 뵈엿다. 비렁이도 더욱더욱 처량한 소리로 노래를 계속한다.

"집도집도 우리집은 / 잘난형제 모다나서
고루거각 남전북답 / 들뷔셔서 팔어먹고
류리개걸 헛허질제 / 옥석구분 이내몸도
할일업시 이 신세라 / 녜 전 안해 생각나서
보고지고 애가타되 / 간곳몰나 방황터니
지금부터 삼년전에 / 무리손님 모시고서
희희락락 노는 것을 / 영도사서 발견하고
아는체를 하엿더니 / 녜 전 안해 본듯만 듯
코우숨이 대접일네 / 다만다만 내의처제(妻弟)
병신몸을 불상타고 / 과자한봉 집어주고
그 후다시 안정사에 / 재차맛나 인사하되
본숭만숭 그저말고 / 다만다만 내의처제
병신몸이 불상타고 / 먹던밥을 다시주네
똥그랑 땡! 똥그랑 땡!"

노래는 여기서 끗이낫다. 정신병자의 함부로 나온 소리인가? 어대서 드러익힌 군소리인가? 뭇 손님의 두 눈들은 비렁이의 얼골로 시선(視線)이 모여가고 마럿다. 그러나 그 비렁이는 여전히 진실한 무슨 감촉을 참으로 바든듯한 모양이 얼골에 가득하엿다. 여긔저긔서 10전 은화, 5전 백동화가 한푼씩 두푼씩 비렁이의 주머니 속으로 드러갓다.(끗)

   
 
(6) 전국 각 지역 "동그랑뗑" 몇 편 소개.
① 경남 거제시 신현읍 배천수씨가 놀이할 때 청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노래, "동그랑뗑" 거제민요이다.
"제비란 짐생은 제제몸이 곱아서 팽앙기상을 돌리라 동그랑뗑 동그랑뗑
모구란 짐생은 뒤뒷다리가 질어서 우편부배달이 돌리라 동그랑뗑 동그랑뗑
까마귀란 짐생은 제제몸이 검어서 굴똑새를 돌리라 동그랑뗑 동그랑뗑
깡챙이란 짐생은 제재주가 좋아서 대목질로 돌리라 동그랑뗑 동그랑뗑
벼룩이란 짐생은 뛰뛰검을 잘뛰서 노리사심을 돌리라 동그랑뗑 동그랑뗑
빈데란 짐생은 제제몸이 넓어서 삿자리구멍을 밝힌다 동그랑뗑 동그랑뗑
황새란 짐생은 고고개가 질어서 논고동줍기로 돌린다 동그랑뗑 동그랑뗑"

② 충남 논산군 은진면 매동리 한갑수씨가 부른 「둥구렁뎅 노래」이다.
"똥그랑땡 똥그랑땡 /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길으니 / 우편국으로 돌리고
똥그랑땡 똥그랑땡 / 물새란 놈은 물색이 고우니 / 기생첩으로 돌리고
똥그랑땡 똥그랑땡 /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 기생방으로 돌리고
똥그랑땡 똥그랑땡 / 다람쥐란 놈은 달음질을 잘하니 / 운동장으로 돌리고
똥그랑땡 똥그랑땡 / 까치란 놈은 집을 잘하니 / 목수에게 돌리세."

③ 전북 남원시 덕과면 용산리 한씨 할머니가 부른 "동그랑땡" 가창유희요이다.
"동그랑땡 동그랑땡 / 제비란 놈은 눈매가 고와 기생첩으로 돌리고동그랑땡 동그랑땡 /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길어 우편배달로 돌리고동그랑땡 동그랑땡 / 참새란 놈은 말을 잘해 생선장수로 돌리고동그랑땡 동그랑땡 / 모기란 놈은 쑤시기를 좋아 아편쟁이로 돌리고동그랑땡 동그랑땡 / 까치란 놈은 집을 잘져 목수쟁이로 돌리고동그랑땡 동그랑땡 / 까마귀란 놈은 옷이 검어 솟땜쟁이로 돌리고"

위의 민요 '동그랑땡'은 주로 잔치판이나 놀이판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며, 전국적으로 불리는 가창유희요로서, 아이들이 동요처럼 부르기도 한다. 서로 손을 잡고 뱅뱅 돌면서 앞사람이 메기고 후렴은 모두가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불린다. 남원에서 조사된 「동그랑땡」의 가사에는 제비와 기생을 연결하는 시대적 풍자도 담겨 있고, 황새의 긴 다리에서 성큼성큼 편지를 돌리는 우편배달부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동물의 생긴 모습을 인간사에 비유하여 연결하는 묘사가 대단히 해학적이고 그럴 듯하다.

또한 각 지역의 '동그랑땡'은 여러 사람들이 돌려가면서 노래할 때 재미가 있고 흥겨웠다. 꾀꼬리-노래-평양 기생, 황새-긴 목-월천꾼, 솔개-눈치 빠름-보초군사, 딱따구리-나무 파기-나막신쟁이와 같이 연결된다. 그러면 수십 종이 아니라 수백 종의 새를 이렇게 짝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모기-다람쥐- 벼룩- 빈대 -거미 까지 첨가되어 수많은 텍스트를 만들어간다. 이 민요의 가락은 단조롭지만 후렴구를 넣어서 흥겹게 부른다. "얼싸절싸 잘 넘어간다 둥그렁 뎅 둥그렁 뎅" 소리에 맞추어 얼쑤절쑤 춤을 춘다. "돌려라 둥그렁 뎅뎅 돌려라~" 둥그렁 뎅~ 둥그렁 뎅~" "생긴 대로 잘하는 대로 모두 모두 돌려라" "둥그렁 뎅뎅 돌려라~" <백조요> "동그랑땡"은 신분에 따른 삶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소질에 따라 살아가는 사회를 소원해 풍자한 민중의 노래이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앤거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