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수망리에 안착한 창작예술의 대가 유퉁(본명 유순)은 작업실 겸 창작 전시장을 차려서 성공한 사람이다. 마음껏 작품구상에 몰두할 수 있고 전원생활도 즐기면서 잊을만하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여행객을 즐겁게 맞을 수 있으니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그것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소박한 자연과 이를 즐기는 여행객과 함께 어우러진 기쁨이다.

그는 2009년 5월, 이곳 수망리에 4천여 평의 땅을 구입해 두었다. 5년~10년을 내다본 그의 탈출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수망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으므로 땅값은 서울변두리의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얻을 만한 수준이었다. 서귀포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있는 야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 만한 곳이어서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는 관념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최소한 인간들과의 만남. 넉넉하진 않지만 작업실을 꾸려나갈 수 있는 수입원도 고려해야 했던 탓이다.

한라산의 남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고사리 축제장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수망리다. 이 수망리를 뒤로하고 바다를 바라다보면 위미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정구역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공식적으로는 서귀포시에 편입되었지만 아직도 도시 내음을 맡기 어려운 전형적인 시골 농촌이다. 수망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광지라기보다는 ‘무랏당’을 찾는 신도들만 찾아오던 성지(聖地)로 더 알려져 있었다.

섬 남쪽의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민간신앙 유적지, 무랏당은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으로 소문이 나서 신도들의 발길이 �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3~4년 전부터 ‘수망리 물보라올레길’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제주도 근교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물보라 길을 찾아가는 여섯 갈래의 올레길은 정말 아름다워서 처음 그곳을 찾는 도시인들은 절로 탄성을 지르곤 한다.

유퉁은 국밥으로 천하를 평정하고, 10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와 토우를 빚다가 도시가 너무 소란스러워서 도망치듯 제주도로 건너갔다.

“자연에서 생명의 구원 받아라.”
그것은 제주도로 출발하고자 다짐 할 때마다 스스로 달랜 말이었다.

2003년도에는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에서 한국교민인 왕 상훈에게 사기를 당해 ‘쇼생크 탈출’의 꿈이 무너졌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대구 팔공산 골짜기에 국밥집을 다시 열어 일어섰고, 그때 마침 제주특별자치도 에서 ‘유퉁의 작품 전용미술관’ 건립 제의가 들어와 제주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준비 없이 전원생활을 동경한 것은 아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탈출 준비는 천천히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주인공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하기 위해 무려 20년을 투자하지 않았던가. 20년은 아니더라도 그 에겐 최소한 5년이라는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약 5년간의 도시탈출을 준비했다.

호주, 뉴질랜드, 몽골 그리고 서울, 부산, 대구, 포항을 오가며 살아가던 그는 북적대는 도시생활이 싫어 도시를 뜨기로 했다. 가장 먼저 수망리에 땅을 확보하기 위해 집을 15평으로 줄이고 자금을 일부보태 4000평의 땅을 비교적 헐값에 사들였다.

아무리 싼값이라 하지만 그로선 대단한 모험이요 투자였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수망리 땅에 25평 규모의 몽골식의 전원주택을 지었다. 작업실 3동을 만들고 방 두 개도 들였다.

섬 속의 산골이라서 자식들이 지내기엔 너무 외져 식구들은 서귀포 시내로 집을 옮겨 살림을 차렸다. 유퉁은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작업실 한켠을 쪼개어 카페를 꾸몄다.

서귀포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들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작업실 겸 라이브카페 ‘띠빠빠 루울라’는 유퉁의 원맨쑈를 손수 꾸려나가는 카페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바닥에는 고운 자갈 같은 조각들로 치장하고 벽의 사방과 천장엔 그의 작품들로 들어차게 만들었다. 화강암 탁자에 놓인 집기들은 모두 직접 빚고 구워낸 것들로 그의 손때가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실내의 인테리어는 특별히 꾸미지 않고 1년간 손으로 흙를 빚고 구어가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들이다.

카페와 작업실 사이의 문을 열면 고고한 박물관에 들어선 느낌이다. 흙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몇 백년 쯤 거슬러 올라간 과거를 느끼게 한다. 울컥 치솟는 흙을 향한 그리움에 향수(鄕愁)로 바뀐다. 콧날이 매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테리어가 따로 필요 없는 그 작업장엔 그가 틈틈이 빚어낸 작품들이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차마 만질 수 없는 기이한 ‘남근’들로 가득 차 있어 작업장에 들어서는 순간 얼굴은 금방 달아오른다. 그래서 여성이라면 전혀 새로운 충격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남성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겠지만.

서귀포로 향하던 나는 유퉁 의 작업실 겸 라이브카페에 들러 녹차 한잔을 마시고 시 한편을 남겼다.
 

서귀포 가다 중간쯤
커다란 ‘남근’
마당에 심어 놓고
밤이면
별 벗삼아
음지를 지키는 사내가 있다.

어쩌다
손님 오면
녹차 한잔 끓여 놓고
미처
잊지 못한
세상 얘기 듣고

차마
더 있으란
말 못해
망원경 하나들고 산에 올라
머나먼 몽골 땅 바라보며

아직
갈 시간 아니라고
객을 붙든다

유퉁에게 왜 하필이면 남근을 빚느냐고 손님들이 물으면 그냥 웃기만 하지만 여기에는 사실 깊은 뜻이 있다. 섬은 음기가 세다는 속설에 따라 이곳의 양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남근 3천개를 빚어 마당에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한바탕 지랄을 떠는 사내가 제주도에 있으니 나는 기쁘다. 그날 수망리 에서 보여준 유퉁의 지랄발광은 모두의 가슴에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심어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가 흙을 빚어 만든 고추밭의 향기는 원시의 불꽃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에게 불만이 있다. 손수 빚고 구어 만든 그 우람한 남근으로 내 인감도장이나 낙관을 만들어 주기로 한 약속을 그는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작품 활동에 바쁘더라도 남근 인장 하나쯤은 내게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그 남근 인장을 들고 면사무소에 들러 인감을 변경할 것이다. 풍기 문란이나 성희롱 혐의로 고소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말이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