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낮 거제면 동림마을. 요즘 들어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전통혼례식이 한 가정집 마당에서 열렸다. 이 특별한 잔치를 보기위해 몰려든 구경꾼만 300명이 넘었다. 11시부터 시작된 예식은 시조 창, 동래학춤 및 진도북춤, 트로트 가수 공연까지 이어지면서 오후 4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풍성한 동네잔치였다.

이날의 주인공은 거제면 동림마을 토박이 농사꾼이자 회사원인 순둥이 신랑 유호준(53)씨와 시조명창이자 국악인으로 유명한 신부 이분선(63)씨. 예식을 전통혼례로 치른 것도 특이하지만, 신부의 나이가 신랑보다 열 살이나 많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동네에서 서로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던 누나·동생 관계에서 이날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이다.

▲ 신부 이분선 씨가 젊은시절 한 국악대회에서 찍은 사진.

예식은 사모관대를 한 신랑이 농악대를 앞세우고 꽃가마 대신 풍선으로 치장한 경운기를 직접 몰고 신부 집 앞으로 오면서 시작됐다. 신부는 용잠비녀에 검정댕기를 늘어뜨렸으며 족두리에 붉은 활옷을 입고 신랑을 맞았다. 예식주례는 부산 동래에서 온 전통혼례전문가가 맡아 1시간40여분간 진행했다.

신부 집 마당에 마련한 뷔페로 오찬을 즐기던 하객들은 오찬기간 내내 이어지던 국악공연을 감상했다. 시조명인명창인 신부는 하객들을 향해 직접 시조가락을 애절하게 뽑았고, 거제오광대의 찬조공연에 진도북춤공연도 이어져 하객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막바지에는 동림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노래자랑이 벌어지면서 이날 잔치의 절정을 이뤘다.

이날 전통혼례식에는 국내 유수의 국악인 40여명이 초청돼 시조명창 신부의 늦은 결혼을 축하했고, 동림마을 청년회를 비롯한 마을주민들도 대거 하객으로 참석해 이들 부부의 앞날을 축하했다. 신랑신부의 신혼여행지는 강원도였다.

옥포가 고향인 신부 이분선 씨는 국내서는 꽤나 유명한 시조명인명창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국악대회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10여년 전 고향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자 거제면 동림마을 지금의 집터를 샀다. 이후 이 터를 관리하기 위해 가끔씩 동림마을을 찾다가 터 바로 앞에 밭이 있던 신랑 유호준 씨를 알게 됐다.

신부 이분선 씨는 이 터에 3년 전 전원주택을 지었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동네 누나 동생으로 지내던 신랑 유호준 씨와 서로의 농사일을 거들어주면서 차츰 정이 들었다. 예식장에서 경운기를 타고 오는 신랑의 입장장면도 매번 새마을 모자를 쓴 채 경운기를 몰고 집 앞 밭으로 일하러 나오던 동네동생 신랑 유 씨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2일 오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부 이분선 씨는 “신랑을 남자가 아닌 진짜 편한 동네동생으로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부부가 됐다”며 “이왕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을 운이었다면 좀 더 일찍 나를 넘어뜨리지··….”라고 짓궂은(?) 농을 던지며 해맑게 웃었다.

신부 이분선 씨는 “고향에 정착해 결혼까지 했으니 이제는 평생을 함께해온 시조 분야 후학들을 키우고 싶다”며 “시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찾아오면 성심성의껏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랑신부의 거처는 거제면 동림마을 상단 청기와집이다.

▲ 전통혼례 예식장이자 공연무대로 활용됐던 신랑ㆍ신부의 집.

이선미 기자  n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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