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라도 도시에서 몸을 빼내 ‘겨울의 진객대구를 만나러 거제도로 떠난다. 그곳에는 찬바람이 부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구 산란기고, 이때 잡히는 대구가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로 둘러쌓인 진해만이 대표적인 대구 어장이다. 진해만에서 부화한 새끼 대구가 한 바닷물을 따라 알레스카나 캄차카 등 북태평양까지 나갔다가 성어가 되어 산란하러 돌아오기에 겨울철 거제 관포, 외포는 대구가 풍년이다.

전형적인 포구마을인 관포와 외포는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대구 잡이 어선과 도매상인들이 선창을 가득 메웠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대구의 80%가 거제연안에서 나왔다. 거제 밖 진해만과 가덕만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조기, 갈치 등 고급어종이 풍부했던 곳이다.

거제 어민들에게는 대구는 풍요와 다복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어종 치고는 크기가 특출한데다 알까지 불룩하게 밴 겨울대구는 마치 ‘바다의 호랑이’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거제사람들은 신년이나 설날선물로 대구선물을 최고로 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90년대, 그의 가신들은 겨울철이면 거제에서 대구를 조달해 파티를 벌였다. 대구 한 마리에 40~50만원을 호가하던 시절이다.

거제장목 원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외포 앞 이수도 앞바다에 특히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과장도 있겠지만 주민들은 대구가 너무 많아 배들이 지나갈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새벽 바닷가에 나가면 대구가 밀려와 한 짐씩 지고 왔다고 했다. 술 마시다가 안주가 떨어지면 열려있던 대구를 빼오거나 통발에서 건져와 먹었다. 그러면 새벽잠이 없는 늙은 어부가 대구 통발을 걷어 올리면서 “그 많던 대구가 어디로 갔을꼬" 라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대구 서리가 큰 흉이 아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때 지나친 어획으로 대구가 잡히지 않은 적도 있었다. 대구 한 마리 값이 쌀 한가마니를 호가하기도 했다. 3대째 대구잡이를 가업으로 이어온 거제시대구호망협회 회장 김석동(60)씨는 “멸종위기에 몰린 대구를 살리기 위해 인공수정으로 방류사업을 펼쳤다”며 “거제시와 어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동해안 일부지방 어선들이 대구가 회유하는 길목에서 치어를 마구잡이로 잡고 있다. 치어는 모양이 비슷한 노가리(대구새끼)로 둔갑, 가공공정에 넘겨지거나 재래시장 등에서 유통 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새벽6시30분 어장에 설치한 그물을 걷어 올리기 위해 장목 궁농 항에서 출항하는 제3창동호(4.99톤)에 올랐다. 대구잡이에는 통발모양 호망을 사용한다. 호망은 대구를 유인하기위한 수단. 길그물을 길게 늘이고 그 끝에 원추형 둥그런 통그물이 붙어 있다. 통그물의 모양이 단지처럼 생겨 호망이라고 한다. 야행성의 대구를 잡기위해서는 하룻밤 이상 바다에 그물을 설치해 두어야 한다. 대구가 밤에 활동을 하다 그물에 걸리기 때문이다. 산란기여서 암컷은 배가 터질 듯 알을 품고 있다.

새벽 조업이 끝난 대구잡이 배는 관포 또는 외포에 모여 대구를 내려놓는다. 크고 위협적인 입, 부리부리한 눈, 얼룩덜룩한 무늬가 위풍당당하게 보이는 대구는 오전 6시 외포, 오후 2시에는 관포 어판장 에서 경매에 부처진다. 경매사는 랩을 하듯 빠르게 말하고 중개인들은 연신 수신호를 한다. 매일 낙찰가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만 겨울철 대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구잡이 배가 모이고 경매가 열리다 보니 관포, 외포에는 대구로 요리하는 음식점이 포구를 따라 10여 곳이나 늘어섰다. 메뉴는 대구탕, 대구찜, 대구회, 대구떡국이 대표적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추운 겨울에는 신선한 대구로 끓인 탕이 으뜸이다. 또한 아가미 뚜껑 부위에 붙은 볼때기 살은 쫄깃쫄깃한 맛이 별미이다. 대구뽈찜이 군침을 돌게 한다. 대구탕을 처음 맛보던 날의 떨림을 기억한다. 육질의 부드러움은 민어를 능가 했고 국물의 시원함은 생태를 넘어섰다. 탕으로는 으뜸이었다.

특히 맑은 탕이 대구탕으로 제격이었다. 내가 즐겨 찾는 대구요리 집은 오직 대구만 넣어서 탕을 끓인다. 무를 넣지 않는다. 주인의 고집이다. 대구의 참맛을 즐기려면 다른 재료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아무튼 대구 요리 중 여행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요리는 대구탕이다. 대구를 썰어 넣고 무를 절편 같이 썰어서 파, 마늘, 등 양념을 넣고 끓인다. 대구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약대구’를 제일로 친다. 알이 가득한 대구를 골라 잘 갈무리 한 다음에 큰 입을 통해서 알과 내장을 끄집어낸다. 알을 천일염에 절여 대구 뱃속에 넣고 한두 달 음지에 말린 후 알을 꺼내 술안주, 밑반찬으로 사용한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남자들 정력에 좋아 약대구로 칭한다.

대구찜은 조금 특별하다. 고춧가루로 매콤하게 맛을 내는 것은 다른 지역의 조리법과 같지만 거제에서는 생대구살이 부서지지 않게 김치에 싸서 찐다. 하얀 대구살의 담백함과 김치의 신맛이 어우러져 맛있다.

생대구회는 산지이기에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겨울철에 대구가 잡히는 지역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지만 생대구회의 식감은 질기면서 물컹하다. 대구 살에 수분이 많고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맛도 밍밍하다. 그래서 어민들은 생대구회 보다 살짝 말린 대구회가 맛있다고 한다. 아가미와 내장을 정리하고 통째로 바닷가에서 3~5일 말리면 수분이 증발되어 더욱 차지고 감칠맛이 난다. 이외에도 대구떡국, 대구부침, 대구전골, 대구곤국, 대구해장국 등 많은 요리법이 있다.

맛있는 대구 맛을 보고 선창에서 대구를 구입했다. 1Kg에 8천 원 하는 4Kg짜리 대구 였다. 대구 축제기간이라 밀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모처럼 찾아간 맛 집에서 허겁지급 대구탕 한 그릇을 비우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곳에 대구가 있어 행복하다.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

@여행정보

-제9회 거제대구 수산물축제… 12월 19~20일 외포항에서 개최

▲ 글·사진/ 손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

-맛집-
외포 항까지 갔다가 대구탕을 맛보지 않고 올 수는 없는 일. 외포리에서 지역 주민들도 첫손에 꼽는 중앙횟집(055-636-6026) 과 허영만의 <식객>대구이야기의 배경이 된 양지바위횟집(055-635-4327), 외포등대횟집(055-636-6426)등이 있다. 대구탕은 한 그릇에 1만5천 원.

-대구 요리법-
재료 대구, 천일염, 모자반(톳나물), 무, 파, 다진마늘, 다진생강, 양념장
1. 대구 몸통을 가볍게 긁고 깨끗이 씻는다.
2. 대구의 내장을 꺼낸다.
3. 곤이를 흐르는 물에 씻어 한입 크기로 잘라 물에 씻어 둔다.
4. 물에 대구 아가리와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센 불에 팔팔 끓인다.
5. 물이 끓고 나면 대구와 모자반(톳나물), 엺게 썬 무를 넣고 다시 한번 팔팔 끓인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