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길

거짓말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얼까?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 줄 거라는 둥,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는 둥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 아마도 선거 때 정치인이 말하는 선거공약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남자의 거짓말이 뇌리를 스친다. 언제, 어느 때? 내 주변 사람들이 손전화기를 받을 때다. 그 이유는 어느 목욕탕 탈의실에서 눈을 뜬 채, 새까만 거짓말 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

“...(상대방 말을 듣고 있는 상태)”
“어, 어. 그래 알았어, 알았다니까(약간 성질 난 목소리). 나 지금 운전 중인데, 나중에 다시 할게.”

물기를 완전히 닦지 않은 상태, 주렁주렁 뭔가 달고 있는 알몸의 그 남자. 한 손에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다른 손으로는 폰을 귀에 대고 통화하는 모습이 배꼽을 잡고도 남는다.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교통사고 현장이 아니라 거짓말 하는 상태를 직접 목격하고야 말았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걸까, 헤어진 여자가 만나 달라는 전화일까? 중요한건 그 상대방은 정말 운전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할 뿐이다.

같은 날 몇 시간 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다른 지역에 근무하는 팀 한분이 손 전화기를 받는다. 이번에는 여성.

“응, 난데. 뭐라고? 어, 지금 회의 중인데, 이따 전화할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통화가 끝나고 버스 뒷좌석에 앉은 주변 몇 몇에게 조금 전 알몸남자의 손 전화 이야기를 들려주자 웃음이 쏟아졌다. 눈치를 챘는지 전화를 받은 여성이 어색해 하는 모습이다.

생생한 거짓말 현장이 또 있다. 퇴근하고 스트레스 푸는 술자리. 물론 분위기는 만점. 익살 좋고 넉살 풍부한 한 선배의 손 전화기가 울린다. 그 사건(목욕탕 사건이라 부름) 이후로 전화를 받을 때, 실제 상황과 다르게 말하는 것을 감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술자리 분위기를 돋우려는 것일까, 손 전화기가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불러댄다.

“여보세요, 예, 예. 누구라고. 그래, 어딘데?
“...”
“어, 나 지금 진주 왔다가 내려가는 길인데, 오늘은 안 되겠는데. 그래, 낼 보자”

짧은 통화시간이었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감시하는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 역시 통화가 끝나자 목욕탕 사건 이야기와 버스 이야기를 재생시켰다. 또 한바탕 소란스런 웃음은 서라운드 상태로 주막에 돌고 돌아왔다. 웬만한 사람이면 그 전화의 상대방은 분명히 조심해서 내려오라고 했을 터. 고의든 아니든 간 어찌됐든, 갑자기 그 상대방이 측은해졌다. 물론, 그 정도의 거짓말이야 나도, 너도, 다 같이 하고 살아가는 게 현실이고, 크게 보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련으로 일어난 사건의 여파일까? 갑작스레 소식이 끊긴 아는 동생의 마지막 전화가 나를 의심하게 만든다. 사업차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그이는 지역에 있을 때가 별로 없다. 나와 그이의 통화.

“어, 난데. 오늘 저녁 시간되면 소주나 한잔 할까?”
“행님, 저 지금 부산인데, 오늘은 안 되겠는데 낼이나 다음주나 한번 하입시다.”

낼이나, 다음주라, 말하던 동생의 전화가 끊긴지 거의 한 달이 돼 가는 지금. 얼마 전, 손 전화기를 잘 못 다뤄 저장된 번호가 전부 날아가 버린 상태. 어찌어찌 알아 전화를 할 수 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전화 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 기사를 볼 그이에게 한 마디로 문자 보냄을 대신한다.

“그 때 전화할 때 니가 부산이라 캤는데, 혹시 거제 있으면서 거짓말 한건 아니제. 전화 한번 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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