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화

거제도는 섬(島)이다. 옛날부터 각종 해산물이 풍부했다. 크고 작은 조개류는 물론 고동 소라 전복이 지천에 깔려 있었던 곳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풍부한 바다자원이 삶의 근원이자 영혼의 안식처였다. 나각(螺角)은 소라피리이다. 바다에서 건져낸 제법 큰 소라껍데기 끝부분에 구멍을 내고 입술을 모아 불면, 뱃고동 소리처럼 한 가지 음이 중후하게 퍼지며 선율이 없어도 멀리 간다. 특히 해안가에는 석기시대의 중요한 도구로서 신화적 제의를 위하여 뼈피리와 소라나팔을 불었다.

거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다. 잦은 왜구와 해적의 출몰로 인해 각 읍치성이나 수군진영 이문(里門)에서 저녁 10시를 전후해, 문지기와 야경꾼이 거제에서 흔하디 흔한 소라고동 나팔을 서너 번씩 연이어 불어 통행금지를 알렸다. 그리고 새벽 4시쯤에는 통행해제를 알리는 소라나팔을 불었다. 거제현민들은 이 소리를 기상시간으로 알고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야경꾼이 거리를 다니면서 성긴 소라나팔을 불어 안전한 잠을 청하도록 했다.

취라(吹螺). 소라나팔 소리. / 정황(丁熿) 1550년대 고현동.
吹螺曉無事 새벽 소라나팔 소리는 아무 일 없다하고
吹螺夕無事 저녁 소라나팔 소리는 별일 없다 하네.
四村父母呼 사방마을의 부모들아~
一如忘牧字 양치기가 모두 하나같이 잊어버릴라.

猛虎渡海來 사나운 범이 바다를 건너 와서
殺盡九川馬 구천동 목장 말을 다 죽인다.
殺馬則知驅 말이 죽으니 말을 타고 달려와 알리는데
殺民無驅者 사람이 죽으니 달리는 자 없도다.

擧一三可反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려도
大抵哀吾民 대저 우리 백성이 가엾도다.
爾失父母久 너는 부모를 옛날에 여위었는데
孰如傷爾身 너의 몸, 누가 다친 것 같다하는가.

조선초기에 거제7목장을 두었다가 1452년부터 거제목장 9개소가 설치되어 거제도 전체가 거대한 목장이 된다. 목장의 말과 소를 지키기 위해 목자나 양치기는 반드시 소라나팔을 가지고 다녔고, 위급한 일(왜구, 도적)에는 반드시 소라나팔을 불거나 말을 타고 직접 와서 상황을 알리도록 했었다. 위 정황선생의 한시 내용 속에 당시의 거제민의 삶이 눈앞에 그려진다.

술회(述懷) 中 / 이행(李荇) 1506년 상문동.
荊棘重重匝 가시 울로 겹겹이 둘러쳐진 오두막,
扞掫夜夜呼 야경꾼들은 밤마다 소리쳐 불러 댄다.

『고려사』기록에는 고려 의종 때 각종 위장이나 노부의 수레 뒤에 따르던 취라군이 이 악기를 불었고, 조선시대에는 궁중연례와 불교의례, 군악에 폭넓게 사용되어 왔으며, 지금은 장구, 북, 징, 태평소, 나발, 자바라 등과 함께 대취타에 편성되어 연주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편에는 배에 상선(上船)하거나 발선(發船) 할 때 소라나팔소리(吹螺) 내도록 병조에서 당부하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장계에 따르면, 서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산에 올라가 소라고동을 불어 신호를 주고받았다고 하며, 각 진영마다 소라 부는 군인이 따로 있었고 공격수의 신호로 쓰이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룻배나 전선이 출발할 때나, 수군진영 훈련 때에도 어김없이 사용했다. [跨海建鎭樓船數十尺鳴角警曉多兵有積] "바다에 걸쳐 여러 진(鎭)이 설치되어 전선(戰船)이 수십 척이나 되는데 나각(螺角)을 불어 새벽을 깨우니 많은 병기가 쌓여 있다"는 거제부사의 옛 기록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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