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짓는 용수골 출신 시골할매의 '아름다운 지각'
글짓기 강좌 빠짐없이 출석, 시·산문집 2권 펴내

아버지 날 보내면서/ 말없이 어루만지셨고/ 어머니 날 보내면서/티끌 없이 살라 하셨다/ 청산도 변한 것 없고/강물도 변한 것 없건 만/세월아 오고 가지 마라/ 우리네 인생 다 늙어 간다/ 저 아래 소녀들아 백발보고 반절마라/ 엊그제 소녀, 밤새 백발성성하더라.

지금은 대우조선소가 생겨 사라진 마을 아주리 용수골, 남부러울 것 없이 열여덟 곱디고운 처녀는 그렇게 시집을 갔다. 철없던 새색시는 6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가난한 농군의 며느리로 아내로 그리고 어머니에서 팔순의 노파로 성장했고 그녀의 인생은 두 권의 시·산문집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최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60이 넘은 늦깍이 만학도 이야기 정도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돼버렸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는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은 없고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즉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의 진리가 담겨있다. 남들은 모든 생을 정리하고 뒷방으로 물러날 팔순 나이에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시켜 나간 할머니의 아름다운 지각은 ‘세상살이 힘들다’ 말하는 이 시대 많은 젊은이들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김병순, 할머니의 함자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30년 아주리 용수골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우리나라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삶이 그러했듯 김 할머니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를 다녔던 할머니는 한글이 아닌 일본어를 배워야 했고 해방이 된 후에야 야학을 통해 한글을 익혔다.

초등학교시절 전교 1·2등을 도맡았던 할머니는 해방 후 부산에 생긴 ‘남선중학교’에 합격을 했지만 거제지역 유림을 대표하는 제1대 거제향교 전교를 역임하신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붓글씨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꿈이, 그리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해방이후 수월리에 시집간 할머니는 포로수용소의 일상을 눈과 가슴에 담았고 7남매를 키워낸 강인한 어머니로 자리매김했다.

인생은 팔순, 시골할매 시인되다.
할머니의 ‘시인도전기’는 지난 2008년 마을잔치에 거제대학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오면서 부터다. 거제대학 학생들 중 4~50세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학생이라는 말을 듣고 무작정 거제대학을 방문해 공부를 하고 싶다며 배움의 기회를 달라 청했다.

할머니는 거제대학 강돈묵 교수님의 소개로 당시 고현동에 소재한 글짓기무료강좌에 등록 할 수 있었다. 글짓기 강좌에 등록한 학생들 대부분이 30~40대의 젊은이들 이었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젋은이들 보다 더 열심히 글공부에 매진했다.

능포에서 고현까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그리고 강의 장소 까지 30여분을 걸어야 했지만 할머니는 강좌가 있는 1년 동안 단 한 번의 지각과 결석 없이 수업에 참가했다.

할머니는 “글공부 할 나이는 지각일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글짓기숙제로 쓴 시가 우연히 할머니 댁에 방문한 손자의 담임선생님에게 발견되면서 할머니는 세상에 소개됐다. 프린트에 깔끔하게 정리된 시도, 공책에 또박또박 쓴 시도 아닌 그저 집에 남는 달력종이 위에 써내려간 할머니의 시는 그렇게 세상과 첫 대면을 한 것이다.

할머니의 시는 문학지인 ‘창작과 의식’ 신인상에 오르며 세상에 소개됐고 문학평론가 홍종기씨는 할머니가 대접한 점심 한 그릇에 할머니의 첫 시집 ‘흙에 살리라’ 출판을 자처했다.

시집까지 출판 됐지만 배움에 목말라하는 할머니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이번에는 경상대학 통영캠퍼스에서 운영하는 ‘시 창작 강의’를 듣기 위해 능포에서 통영까지 3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참석했다.

시 창작 강의 1년 동안 지각은 물론 결석 한 번 하지 않은 할머니는 한 학기 강의가 끝날 무렵 담당교수님에게 다음 학기 수업은 힘들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의를 위해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녀야 했던 할머니의 체력은 한계 였던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런 열정은 결국 강의실을 이동하는 기적을 낳았다. 당시 담당교수였던 경상대학 강희근 교수는 할머니의 열정에 힘입어 기존 경상대학교 통영캠퍼스에서 열었던 시 창작교실을 거제청소년수련관에서도 열어 할머니의 공부를 도왔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가 쓴 글들은 할머니의 두 번째 시집 ‘시골할매’에 모두 실려 있다. ‘시골할매’라는 책표지 제목도 할머니가 직접 생각 해 낸 것이다.

할머니가 낸 2권의 시·산문집 ‘흙에 살리라’ 와 ‘시골할매’에는 할머니의 삶과 애환이 그대로 묻어있는 시 80편과 산문 15편이 담겨있다.

김병순 할머니는 “삶을 살면서 돈과 명예를 위해 사는 것 보다 자신의 열정과 꿈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일은 없다”며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결국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김병순 할머니의 시·산문 2집 ‘시골할매’의 구입을 원하시는 분은 새거제신문(632 -6336)이나 김병순 할머니 댁(682-3905)으로 직접 연락 주시면 됩니다. <새거제신문 최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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