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이날 오후 8시48분쯤 언론사 기자들에게 '국정원 발표문'이란 제목의 e메일을 보내 이같이 말하고 "국정원은 검찰에서 진실 여부가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이 자료에서 간첩사건 피의자 유우성씨(34)에 대한 수사와 기소·재판 과정을 거론한 뒤 "재판 진행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하여 검찰에 제출했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며,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거듭나는 국정원이 되겠다“고 사과 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문서위조 경위 및 지시 여부, 수뇌부에 보고여부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또 "수사 결과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겠다"면서도 남재준 원장 등 국정원 수뇌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지난 8일까지만 해도 "위조는 절대 없었다"며 위조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61살)가 문서 위조사실을 시인한데 대해서도 "우리도(국정원) 몰랐다"며 마치 자신들이 고용한 협력파트너에게 속은 것 처럼 '꼬리‘를 자르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원이 단 이틀사이 입장을 바꾼 것은 검찰이 진상조사에서 수사체제로 전환한데다, 국정원 스스로 대북 휴민트(Humint.인적정보)인 국정원 협력자에게 위조 책임을 떠넘기는 등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는 비판이 거세지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검찰수사에 협조하고 모든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피해보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 일부 의원들의 '가벼운 입'도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위조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자 지금까지는 국정원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다가 갑자기 발빼기와 '침묵' 모드에 들어갔다.

그동안 '주한 중국대사관과 민변 커넥션' '중국정부 음모론' '국익론' 등을 제기했던 윤 모 의원과 김 모 의원은 국정원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새누리당 당직자인 윤 모 의원은 9일 "국정원이 만약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는 만큼 일단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게 도리고 순서"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자료는) 위조가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강조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졌다. 당시 그는 "검찰이, 국정원이 이런 증거를 조작하겠느냐. (중국 내) 방첩사건이 겹쳐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히 2주 뒤 같은 자리에서 윤 의원은 " 국정원이 만약 위조에 가담 했다면 (자살을 시도한 조력자) 김 모씨를 데려다가 검찰조사를 받으라고 했겠느냐"고 말했다. 여전히 국정원도 위조를 몰랐을 것이라고 두둔하는 모습이지만, 공문서 위조에 대해선 사실상 인정했다.

'중국 비하' 파문을 일으키면서 증거조작 가능성을 부인한 검사 출신 김 모 의원도 입을 다물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달 19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중국을 겨냥해 "선진국이 안된 국가들에서는 정부기관에서 발행한 문서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비상식적인 발언을 해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았고, "꼭 중국을 지칭하는 건 아니지만..."이란 발언내용은 '패러디'가 되기도 했다.

또다른 검사출신 부산지역 새누리당 박 모 의원은 지난달 2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 국정원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국민이 관심있는 사건이 아니다"고 말해 한동안 논란이 됐다.

차기 부산시장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진 박 의원은 이날 "저 같은 사람조차도 이 사건의 경위를 잘 모른다"며 이같이 말해 네티즌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시 공무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 증거자료에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같이 밝힌 뒤 "이 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조속히 밝혀서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종합>
 

서영천 기자  syc6871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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